[신면주칼럼]슬픈 계절

2022-11-08     경상일보

올해 가을은 슬픈 계절이 되고 말았다. 해맑은 젊음들이 유성이 되어 가을 흰 국화 속으로 사라졌다. 한 움큼 쥐고 있던 보석을 강물에 놓아 버리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왜 남의 나라 종교 축제에 그리 많이 몰려들었냐고 탓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어느 한 분이 우리의 조상이던가. 고사리손 꼬맹이들에게 핼러윈 가면을 씌우고 영어를 가르친답시고 불러 모았던 것이 우리 어른들 아니었던가. 수많은 아파트 중 어디 하나라도 우리말 이름이 있는가.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한 만큼 희생과 양보와 질서가 우선임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이런 판에 새삼 남의 나라 축제 운운함은 자가당착이다.

축제란 것도 그렇다. 헤아릴 수도 없는 축제가 매일 판을 벌이고 있지만, 어디에도 젊은이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발산할 판은 없다. 적당한 볼거리, 먹거리 만들어 놓고 각설이를 필두로 노점상을 불러 모으고 연예인 몇 명 모셔놓고 축사다 뭐 다 하면서 정치인들은 표 계산, 상인들은 돈 계산, 관계자들은 자리 계산하는 것이 축제의 실상이다. 경쟁에 시달리고, 공부에 지치고, 취업에 주눅 들고, 집값에 사기 당하는 젊은이들에게 오광대 탈바가지라도 하나씩 씌워서 목청 높여 토론도 하고, 스스로 만든 공연도 하고, 젊음을 구가하는 술판, 춤판, 눈맞춤판도 벌이고 질서유지도 스스로 담당하게 하는 그런 축제를 청년들은 고대하였을 것이다.

이런 속에서도 촛불이다, 추모제다 하면서 이 슬픔을 정치판에 팔아넘기려는 약삭빠른 ‘슬픔팔이’들이 난장을 벌일 태세이다. 적벽대전 이후 유비의 제갈공명과 오나라의 주유는 천하통일의 요처인 형주 땅을 두고 격돌을 벌이지만, 그때마다 제갈량의 계책에 주유는 패배를 거듭하다가 결국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제갈공명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주유의 상가에 제갈공명이 조문을 빙자하여 스스로 찾아와 목 놓아 울면서 지어온 조문을 낭독하는 등 슬픔을 과장하자 이에 속은 오나라의 장수들도 같이 슬픔에 겨워 통곡하며 원한을 삭이고 만다. 제갈공명은 일생일대의 슬픈 연기를 통하여 오나라의 침공을 방지하는 정치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다.

슬픔을 과장하여 지나치게 드러내고자 하는 자는 정치적 계산을 하는 자이다. 슬픔은 가슴에 묻고 그 가슴앓이가 모든 분야에서 각성으로 승화돼야 젊은이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았고 그때마다 그럴듯한 음모론이 떠돌아 다녔지만 그것이 사실인 경우는 거의 보지를 못하였다. 자칫 정치적 음모론에 휘둘려 슬퍼할 권리조차 농락당하는 일이 없도록 자중자애 하여야 할 시점이다.

이태원특별수사본부가 결성됐으니 곧 참사의 경위와 원인, 책임 소재 등이 밝혀질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어느 특정 조직이나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또 하나는 국민의 안전 책임자인 경찰을 상대로 조사가 주로 이루어질 것인데 수사본부가 경찰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결국 셀프 수사의 모양새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철저히 수사를 하여도 국민들이 셀프 수사를 신뢰하지 않은 이상 또 다른 의혹만 양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때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수년간의 조사를 하고 예방시스템을 보완했지만 이러한 대규모 참사는 이어지고 있다. 결국 예방시스템을 움직이는 책임자들의 안전에 대한 감수성과 예지력 부족이 거듭되는 사고의 원인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저녁 6시40분경에 보통 시민 한 사람이 112에 이태원 쪽 인파가 너무 몰려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그대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런 시민과 같이 안전에 대한 예지력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으리라 짐작된다. 아무리 첨단 전자기기로 예방시스템을 만들어도 인간의 의지가 실리지 않으면 한낱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 사람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함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복잡한 사파의 미련은 다 접어두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가시기를 기원한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