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5)]오아시스 도시, 부하라(Bukhara)

2022-11-11     경상일보

부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페르시아 문명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박물관이다. 이스파한(Esfahan)에서 동쪽을 향해 출발한 실크로드가 중앙아시아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첫 번째 오아시스. 이란고원을 가로질러 키질쿰(Qyzylqum) 사막을 건너온 대상들은 신기루와 같은 오아시스를 만나 신께 감사하고 지친 여정에 안식을 얻었을 것이다. 부하라는 네 방향의 실크로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에서 계속 동진하면 초원지대를 건너 중국과 연결된다. 북쪽으로 향하면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를 통과하여 러시아로 닿는다. 또한 남쪽으로 향하면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인도로 들어선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로서 상업적인 여건만 갖춘 것이 아니다. 풍부한 수량을 제공하는 자라프샨(Zarafshan)강이 흘러들어 관개농업까지 발달했으니, 황량한 사막에서 이만한 정주 여건을 갖춘 곳도 드물다. 고대로부터 페르시아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정주를 시작했다. 3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의 도시와 건축 문명이 전파되었고, 8세기에는 이슬람 문명권으로 편입되었다.

부하라가 중앙아시아의 대표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10세기 사만조(Samanid)부터라고 볼 수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만 왕조는 부하라를 도성으로 삼아 페르시아 문명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사만조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스마일 사마니드 영묘는 돔을 구축하는 기술, 조화로운 비례와 독창적인 장식으로 페르시아 건축의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13세기 이후 몽골족을 필두로 한 여러 민족의 침략으로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기도 했다.

16세기부터 약 300년간 이곳은 부하라 칸국의 수도로서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된다. 19세기 부하라에는 38개의 대상 숙소, 6개의 교역장, 16개의 공중목욕탕, 45개의 시장, 200개가 넘는 모스크, 100개 이상의 마드라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실크로드에서 가장 번창했던 교역도시 중 하나였던 것이다.

현재의 도시구조와 건물들은 대부분 20세기에 재건된 것들이다. 하지만 양식적으로는 18세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는 세 개의 핵으로 구성되었다. 아르크(Ark)라는 군사적 요새,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군집되어 있는 종교적 중심으로서 포이 칼리안(Poi-kalyan)광장, 그리고 인공 수조를 중심으로 하는 리아비 하우스 (Lyabi Hauz)가 각기 도시영역의 핵을 이룬다. 기능별로 핵심적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도시의 특징이라 하겠다.

부하라 역시 성곽도시로서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르크(Ark)라고 부르는 요새는 행정시설이 집중되었던 성이다. 사만 왕조와 부하라 칸국 시대의 도성이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성안의 건물들은 우여곡절 끝에 18세기에 중건되었으나, 이마저 20세기 러시아 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다. 현재의 성곽은 20세기 이후에 재건된 것이지만 중세 이슬람식 성곽의 모습을 성실하게 재현했다.

성곽의 위용은 아직도 위풍당당하다. 황토벽돌로 이토록 웅장한 성벽을 쌓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4층 높이의 성문은 양측에 미나레트 모양의 망루 탑을 설치했다. 성문 3층부에는 투각창을, 4층부에는 베란다를 두어 변화의 생동감을 주었다. 특히 항아리 모양의 곡선 실루엣을 갖는 망루형 치성의 모습은 장중한 무게감을 주면서도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한다. 성벽에는 수평으로 박아 넣은 통나무 기둥을 볼 수 있다. 지진에 취약한 황토벽돌 구조의 약점을 보완한 일종의 면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리아비 하우스(Lyabi Hauz)는 ‘연못가’라는 뜻을 갖는 오아시스의 실체적 장소다. 작은 방형 연못(42×36m)가에 푸른 수목이 울창하다. 황량한 사막에서 이 정도의 연못이면 그들에게는 방대한 호수가 아닌가. 이 또한 17세기에 운하를 파고 물을 끌어들여 인공적으로 만든 오아시스다. 사막을 건너온 카라반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쾌적하며, 안락한 휴식처였음이 분명하다. 현재까지도 부하라 시민이나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도심유원지로 꼽힌다.

연못가에는 리아비 하우스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서 있다. 건물이야 근래에 지은 것이지만 찻집으로서의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푸른 연못을 앞에 두고 울창한 수목으로 둘러 싸여, 나무 그늘에 안긴 카페. 그야말로 잘 연출된 오아시스의 한 장면이다. 연못 주변으로는 카라반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둘러싸고 있다. 수피교의 명상처인 캉카(Khanqah)와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 그리고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 사라이들이다. 종교와 교육, 교역, 그리고 숙박시설을 두루 겸비한 리조트 단지라고 할까. 교역과 휴식이 이루어진 국제적인 위락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본격적인 교역장은 아르크 주변에 배치된 바자르에서 만날 수 있다. 중심 가로변에 회랑과 같은 시장을 만들고 거기에 상점들이 들어서 가로형 시장을 만들었다.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스크의 대문 형식(Ivan)으로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광장과 상점가를 만날 수 있다. 전문상가별로 구분된 골목들이 발길을 헤매게 만든다. 잘만 뒤지면 ‘마술 램프’같은 진귀한 물건도 건질 듯하다.

시장의 모습은 중세시기 교역 도시로서의 면모를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중앙아시아와 이란, 러시아, 인도, 중국의 상인과 상품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고 여기에서 교역이 이루어졌다. 도시 곳곳에서 돔과 볼트 지붕을 갖는 교역장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토키(toki)’라고 부른다. 토키는 폭염과 강한 자외선을 피할 수 있는 실내 상가를 의미한다. 판매하는 상품이 다를 뿐 상가의 모습은 약 40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부하라는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야외 박물관임에 틀림이 없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