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개발자 전성시대 속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가히 광풍이라 불릴 만큼의 개발자 품귀현상이 몇 년간 지속되어 왔다. 저금리 기조에 따른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갈 곳 잃은 돈은 소위 ‘대박’이 가능한 스타트업 시장으로 계속 유입되었다. 스타트업 시장의 투자 규모가 2021년 11월에 이미 연간 누적액 10조원을 넘고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약 7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정도로, 이미 대기업 반열에 오른 네이버, 카카오 등의 IT 플랫폼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플랫폼들에 대한 경쟁적인 투자가 지속되었다. 중소기업벤처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총 23개 유니콘 기업 중 약 65%인 15개가 올해 상반기에 등록되었는데, 기업 가치 10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은 보통 ‘대박’이 되어 왔던 기업공개(IPO)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런 열기 속에 투자자들과 창업자의 꿈을 실제로 구현해 줄 수 있는 개발자들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일 수 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이 꿈꾸는 플랫폼을 수 년 간에 걸친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구현해 줄 수 있는’ 시니어 개발자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수개월의 교육 과정만 거친 개발자들도 크게 가릴 것 없이 채용해 왔다.
그러나 장밋빛으로만 가득했던 상황이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경제 상황과 맞물려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희미한 성공 가능성만 발견해도 투자를 하던 투자자들이 자금줄을 죄기 시작했다.
당장 올해 3분기 스타트업 투자액은 전년 동기대비 40% 정도 감소하였다. 특히 시리즈B 이상의 중후기 투자에 해당하는 100억원 이상의 대형투자가 크게 줄고 시드나 시리즈A 단계의 초기 투자에만 집중된 경향을 보였는데, 일반적으로 개발자들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시리즈 투자를 어느 정도 진행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개발자들에게 암울한 결과이다.
또한 올해 4월 말부터는 대형 IPO들이 무산되고 기대 받던 쏘카마저 IPO 흥행에 실패하였으며 최근에는 KT계열 밀리의 서재가 코스닥 상장을 철회하였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플랫폼들이 구현되었지만 암울한 시장과 맞물려 해당 플랫폼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고, ‘대박’의 가능성은 투자 실패의 두려움으로 빠르게 변모하여 많은 스타트업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이렇듯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숙련된 시니어 개발자들을 통해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찾기 위한 작은 단위의 실패들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며 어려운 투자 혹한기를 견뎌낼 수 있어야만 한다. 또한 기술에만 몰입하는 개발자가 아닌, 기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경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경영진에게 먼저 제안해 줄 수 있는 개발자가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물론 앞으로의 경제 부침과 관계없이, 모든 산업과 생활이 IT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개발자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기업의 생존이 절실해지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설계를 개발로 ‘빨리 구현 가능한’ 시니어 개발자와 비즈니스 언어를 개발 언어로 ‘빨리 번역 가능한’ 개발자가 우대받는 이른바 ‘개발자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 개발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든 현재 개발자이든 관계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이 가진 기술이 비즈니스 혁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힘과 경영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장영준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