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제 2의 반구대 암각화
울산의 정체성 개념 중 ‘친환경 산업수도’와 ‘문화복지도시’는 상호 조화되어야 이미지가 산다. 그 조화의 연결 매체로는 ‘고래’가 제격이다. 반구대 암각화 300여 점 중에 고래 그림이 63종이다. 암각화의 주전 멤버는 단연 고래라고 할 수 있다. 대곡천 골짜기에 새겨진 옛 고래의 염원이 백리 태화강을 따라 흘러 고래가 사는 고래의 고향 장생포에 이른다. 거기서는 또 고래바다 여행선이 고래를 만나러 바다로 나간다. 울산에는 산에도 바다에도 고래가 있다.
제 2의 반구대 암각화는 정말 있을까? 울산의 두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와 제147호 천전리 각석은 서로 700m 지근거리에서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둘 다 선사시대 작품이지만 암각화는 신석기 전기 것으로 청동기 때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각석보다는 연륜에서 훨씬 형이다. 2010년 7월에는 남구 황성동 일대에서 신석기 전기(기원전 4000년~5000년)의 유적이 또 발굴되었다. 그날 아침 보도 현장에서 직접 본 ‘사슴 뼈 작살 박힌 고래 뼈’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고래 기름 사용도 간접 증명되었다. 이로써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연대도 약 7000년 전까지로 편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 국보 형제가 위치한 대곡천 일대는 굽이굽이 경관이 빼어나다. 무수한 시인·묵객·지성들이 자연을 노래하고 심신을 연마했다. 반구서원 삼현제(三賢祭)가 거행되는 반구서원(盤龜書院)은 지역 유림의 정수가 녹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청학(靑鶴)이 날아든 집청정(集淸亭), 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모은정(慕隱亭) 등 주변의 유서 깊은 정자들과 함께 성리학의 이상향을 추구한 울산 ‘구곡 문화(九曲文化)’가 펼쳐진 지역이다. 울산은 분명 고고적(考古的) 유적을 보유한 고도(高度) 문화지역이다.
울산에 노인들로부터 대곡리 계곡에 암각화 그림 같은 것이 또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있다. 필자도 어르신 한 분으로부터 어릴 때 사연댐이 생기기 전에 진달래 꺾으러 갔다가 현재 댐의 아래쯤에서 암벽그림을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암각화가 댐 아래 쪽 어딘가에 있을까? 혹 과거에 있었으나 댐 건설공사 때 파괴되어 버렸을까?
제 2의 반구대 암각화는 있을 것이다. 사연댐을 비우고 또 다른 암각화도 찾아서 대곡 일대를 ‘차원 높은 문화 골짜기’로 살려내야 한다. 그래서 고래와 문화가 살아 있는 친환경 산업수도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이 비전의 대전제는 대체 식수원 마련이다. 식수원 확보와 암각화 보전이라는 ‘생존권’과 ‘문화가치’가 부딪혀 진퇴양난의 세월만 안타깝게 흐르고 있다. 숱한 전문가·정치인·명사·학생들이 찾아와 애정을 쏟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2010년 2월 어느 날 영하의 날씨에 당시 여당 대표 J씨가 사연댐 얼음 위로 걸어가서 살펴보고 돌아 나오다가 얼음판이 깨져 물에 빠지는 아찔한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고생까지 했으나 진전된 것이 없다. 그간의 대책 방안들 중 이제 ‘수문 설치’만 남았으나 이에 대한 반대논리도 상당하다.
‘암각화 햇볕 볼 날’은 언제인가? 어렵게 합의된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이 폐기될 지경이고 대신에 정부와 상수원 전환 협의안 등이 나오는 실정이다. 울산도 독자적으로 ‘맑은 물 확보 종합계획수립 용역’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름에는 지번도 등기도 없다. 물은 하늘이 준 인류의 자산이다. 삼천리 강물도 삼천리 공유자산이다. 어느 한 지자체의 것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하늘과 물에 대해서만은 지역이기(地域利己)를 버려야 한다. 울산의 전혀 새로운 결단도 필요하다. 자체 상수원 개발 노력은 바람직하다. 다만 이는 국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보’는 지역 자산이 아닌 ‘나라 보물’이요, 물 먹는 울산사람도 ‘나라 국민’이다. 이제는 중앙정부도 조정만 하지 말고 직접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