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행복한 삶의 초석(礎石), 한글 문해교육
군대에서 보내온 아들의 편지를 육십이 넘어서 읽었다는 할머니, 늦은 나이에 글을 깨쳐 혼자 버스를 타고 은행, 동사무소 등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삶이 달라졌다는 할머니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에는 글을 알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경제 대국, IT강국인 우리나라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고 현장 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울산에는 초등학력 잠재수요자가 2만4000여명에 이른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기초학습 능력인 문자를 읽고 쓰는 교육 즉, 문해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유네스코(UNESCO)는 ‘문해(literacy)란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해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한다. ‘평생교육법’ 제2조에서는 문해교육을 문자해득(文字解得) 교육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문자해득 능력을 포함한 사회적·문화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생활능력 등을 갖출 수 있도록 조직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문해 영역은 문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역량인 숫자, 그림, 외국어, 스마트폰 활용법 등으로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문해’란 용어는 국제기구에서도 자주 사용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법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학습자와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흘’을 ‘4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혼란을 겪었다는 이야기나,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에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라고 반문했다는 경우 등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각종 논란 끝에 최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 요즘은 문해력이나 문해교육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요즘 시대에는 각종 업무를 비대면 방식으로 처리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경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느끼게 된다. 은행은 지점을 줄여나가고,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더 많은 혜택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직접 주문을 받는 대신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 식당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문해력이 없다면 앞으로 점점 더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기에, 문자해득의 가장 기초적인 ‘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글’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울산은 50여 개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이 있으며, 한글뿐만 아니라, 초등·중학 학력인정 교육, 스마트폰, 외국어 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 이 모든 교육의 기초는 한글교육으로, 한글을 기반으로 해야만 정보의 취사선택, 숫자 익히기, 간판 읽기, 관공서 일처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글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해교육기관, 문해교육 프로그램 등의 법정 용어는 시민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문해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한글교육’ ‘한글교실’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글을 알려주는 교육은 ‘한글교육’, 금융과 관련된 지식을 알려주는 교육은 ‘금융교육’, 학력을 인정해주는 교육은 ‘학력인정 교육’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문해’와 ‘한글’용어를 병행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시민 누구나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 문해교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교육 대상자에게도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글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해, 울산광역시는 ‘한글배움도시’ 원년도시를 선포하고, 울산 시민 중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은 모든 시민의 기본 권리인 학습권 보장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 정책과 프로그램을 펼쳐야 할 것이다.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