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백지시위와 표현의 자유

2022-12-08     경상일보

중국이 코로나19 제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봉쇄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지난달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봉쇄 때문에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져 피해가 확산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제로 코로나 해제’를 주장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그 시위가 베이징, 상하이, 청두, 우한 등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시위에서는 참가자들이 A4 용지와 같은 백지를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 봉쇄 반대’, 나아가서 그런 정책을 고집하는 공산당이나 통지자에 대한 반대가 있을 터인데도, 정작 시위현장에서는 백지를 들고 일절 말이 없는 일명 백지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지시위와 비슷한 것으로 침묵시위도 있다.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한 이란 대표팀 전원은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진행된 식전행사에서 국가가 연주되고 있는데도 국가를 제창하지 않았다. 고국 이란에서 히잡 때문에 발생해 두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반정부시위에 동조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다. TV중계는 국가를 제창하지 않고 엄숙히 침묵을 지키는 대표팀원들과 그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눈물을 흘리는 이란 여성 관중을 포착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시위는 다수의 사람이 집회해 위력을 보이면서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본질이다. 당연히 구호가 등장하고 팻말이 등장하게 돼 있다. 그런데 구호도 없고 글이 쓰여진 팻말도 없는 백지시위나 침묵시위는 시위치고는 특이한 시위다. 굳이 말이나 글로서 주장을 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시위대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굳이 그런 시위를 할 이유가 없다. 집단적으로 의사표현을 하고자 모인 바에야 얼마든지 구호로 혹은 팻말로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보기 싫은 정치인을 꼭 찍어서 물러나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지시위나 침묵시위는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나타나는 시위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일개 작은 시민이 처벌을 면하거나 가볍게 하는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찾아낸 것이 의도적인 백지 혹은 침묵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시위를 보고 있으면, 당장의 이슈도 이슈지만,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하는 정부라는 점이 먼저 눈에 띤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 출판, 예술작품의 제작에서 사전 검열이나 심의는 없어졌다. 집회나 시위도 극히 제한된 범위를 제외하고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익과 관계없이 타인의 권익을 훼손하거나 지나친 음란표현이 아니라면, 무슨 생각이든지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단계이다. 바야흐로 보수든 진보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동남아 순방을 가면서, 현정부에 비판적인 MBC방송국을 특정해 MBC 소속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5일자 국가조찬기도회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군데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언론을 통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자유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 현정부가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에 대해 공권력 발동을 꺼린 것도 그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MBC 소속 기자의 전용기 탑승 거부는 뜬금없는 사건이다. 현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이나 표현이 있듯이, 현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표현에 대해서도 좀 더 넓게 포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