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6)]사막의 항구, 포이 칼리안(Poi-kalyan)광장
622년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박해를 피해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향했다. 헤지라(Hejira)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이슬람 정복 전쟁의 시작이었다. 페르시아로 진출한 아랍인들은 사산조 통치자들을 초원 멀리까지 쫓아내면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장악했다. 이슬람 제국으로 편입된 민족들은 정복자의 종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문명 변동에 직면해야 했다. 이는 종교와 정치, 교육과 학문, 상업과 문화에 걸친 사회적 대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슬람 도시로서 새로운 도시적, 건축적 요구가 발생했다.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 분묘, 교량, 항구, 병원, 대상숙소, 도서관 같은 시설이 새롭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슬람 정복자들은 특정한 건축양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강요할 만큼 우월한 건축 문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필요한 시설들을 아름다운 건축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페르시아인들의 선진기술을 빌려야 했다. 이슬람 사회에 필요한 공공시설에 페르시아의 건축양식과 기술이 적용되면서 새로운 이슬람 건축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도시와 건축양식은 실크로드를 타고 중앙아시아 먼 곳까지 전파되었다.
이슬람 도시에서 모스크는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공공시설이었다. 무슬림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된 하루 다섯 번씩 기도회가 열리고, 금요예배가 열리는 필수적 종교시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는 초등교육을 다루는 기본 교육기관의 역할도 했다. 마드라사라는 대학이나 도서관이 부설되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정으로 사용하거나, 감옥이나 영안실을 두기도 했다. 모스크는 커뮤니티 시설로서 도시의 핵심을 차지했다. 여러 부속시설과 더불어 모스크는 ‘지상의 도시(Citivas Mundi)’안에 세워진 진정한 ‘신의 도시(Citivas Dei)’가 되었다.
부하라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도시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었다. 거대한 광장으로 종교적 핵을 만든 것이다. 모스크와 마드라사로 에워싸인 방형 광장. 바로 포이칼리안(Poi-kalyan)광장이다. 광장 한편에는 거대한 미나레트가 등대처럼 서 있다. 하부 직경 9m, 상부직경 6m, 104계단, 높이 45.6m에 달하는데, 원래는 더 높았다고 한다, 12세기 초에 초창되었지만, 1920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침공하면서 파괴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970년대에 복구된 것이다. 하지만 그 위용은 초창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나레트를 모스크 밖에 독립적으로 세운 것은 특이한 사례다.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독립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상부에 아로형 창문까지 달려있는 모습이 마치 등대를 빼닮았다. 이에 이 광장은 사막의 항구라는 메타포를 연출한다. 푸른색 도자타일은 중앙아시아 건축에서 사용된 최초의 사례로 알려진다. 그 위용과 아름다움 때문인지 몽골의 침략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유려한 실루엣과 은은한 채색 모자이크 타일로 치장된 미나렛이 신앙의 세계로 이끄는 등대로서 상징적 랜드마크가 된다.
광장의 한편에는 사원(칼리안 모스크)이 있고, 맞은 편에는 신학교(미리 아랍 마드라사)가 대면하고 있다. 첨두아치로 구성된 두 건물의 외벽이 광장을 내부공간처럼 느끼게 한다. 마주 보는 두 건물의 건축적 형식은 유사하지만, 높이와 디자인에 있어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모스크는 단층이며 외벽은 황토벽돌로 마감했다. 마드라사는 2층으로 첨두아치로 구성된 아케이드를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했다. 출입구가 아치형 대문(Ivan)형식이라는 점, 모스크의 외벽에 벽감형 첨두아치(blind pointed arch)를 두어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이 탁월하다.
칼리안 모스크는 본래 칼란 미나레트가 부속되어 있던 12세기 모스크 터에 16세기 초에 중건된 것이다. 부하라의 대표 모스크로서 건물 규모는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모스크(Temurid cathedral mosque)보다 작지만 대지 규모는 훨씬 더 크다. 1만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규모다. 모스크는 전통적인 사방에 대문 형식을 갖춘 4-이반 형식으로 배치되었다. 1970년대 복구공사에서 모스크 정면이 모자이크 타일과 자기 벽돌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문채로 사용되는 이반(ivan)형식은 페르시아 건축의 걸출한 유산이다. 3층 높이의 직사각형 면에 첨두아치를 움푹 파서 현관부를 만들었다. 직사각형의 테두리는 모자이크 타일로 정교하고 현란한 문양으로 장식했다. 첨두아치의 천장은 반쪽짜리 돔 형태를 이룬다. 천장에 가느다란 리브 선들은 이슬람 건축의 전형적 미감이다. 실제로 드나드는 출입문은 작지만 높고 웅장하며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는 진입 공간이 된다.
중정은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 눈부실 정도로 밝은 공간이나 마치 시간이 정지된 영화의 장면처럼 무거운 침묵이 가득하다. 그 중정 안에 팔각형 형태의 영묘와 나무 한 그루가 뜬금없이 서 있다. 기하학적인 파사드로 둘러싸인 텅 빈 내정에서 당당하게 버티고선 나무 한 그루가 기묘하게 대비를 이룬다. 르네 마그리트의 추상화를 보는 것처럼 극단적 대비의 천연덕스러움을 연출한다. 둘러싸는 회랑에는 208개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288개의 돔 지붕이 설치되었다. 내부의 미흐랍(mihrab)은 흰색 감실 안에 다시 현란한 채색 타일의 감실을 만들었고, 그 안에 다시 감실을 만들었다. 눈이 부시게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감실 천장을 장식하는 무하르나스 장식(종유석 형태의 천장 장식)이 중심의 신성함을 묘사하는데 부족하지 않다.
칼란 모스크 반대편에는 미르 아랍(Miri-arab) 마드라사가 마주 보고 있다. 칼리안 모스크, 미나레트와 더불어 포이 칼리안 앙상블을 이루는 건물이다. 마드라사는 앞의 두 건물보다 늦은 시기인 16세기에 초창되었지만 마치 처음부터 통합적으로 계획된 것처럼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광장은 모스크의 내정처럼 이슬람 신앙을 이끄는 등대가 되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