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장애인이 걱정없이 문화를 즐기는 사회

2022-12-12     경상일보

발달장애란 사회적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 자폐증·지적장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복지관에 갈 준비를 하고 스스로 버스에 올라타 복지관에 도착하고, 복지관에서 선생님과 활동을 하는 일상은 수개월 혹은 수십 년의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장애인의 돌봄과 자립을 지원하는 장애인복지관과 같은 복지기관이 운영 중단 사태를 겪자 발달장애인들의 일상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사실상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는 가족들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가족의 돌봄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한 경우는 32.6%로 나타났다. 그 중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돌봄 시간이 늘었다는 응답이 51.9%에 달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으로 인해 발달장애인들은 지역사회시설 이용과 외출의 어려움을 겪었고(31.5%), 학교 등 교육시설 이용 중단(30.2%) 등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출(68.5%), 모임·스포츠 활동 등 외부활동(67.3%), 문화·여가활동(69,9%) 등이 코로나19로 인해 불편을 느낀 분야로 꼽혔다.

최근 울산 동구의 한 영화관에서 동구지역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기 위해 영화관람 행사가 열렸다. 울산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동구지부가 주최하고 울기라이온스클럽이 후원으로 영화관 1개관을 빌려 진행됐다. 발달장애인과 보호자 92명은 간식을 먹으며 애니메이션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를 관람하고, 관람 후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일상을 즐겼다.

동구에서 공식적으로 발달장애인 영화관람이 이뤄진 게 처음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발달장애인은 낯선 환경에서는 소리 지르는 등 돌발 행동을 해 공공시설 이용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이 문화생활을 하지 못할 충분한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문화권은 경제권, 이동권, 교육권 등의 권리와 함께 장애인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문화를 향유하는 게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 요즘, 장애인들이 문화혜택을 반 강제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 예를 들어 올해 관람객 1000만을 넘긴 영화 ‘범죄도시2’가 화제가 됐을 때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이 대화에 끼지 못했다. 어떤 대사가 인상 깊었다거나 어떤 장면이 중요했다는 등의 대화 맥락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의 소외가 관심이 없다거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가 아니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해서라면 사회에서 소외받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문화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 경제사정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생존권만 갖춰진다고 충분하지 않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동권 문제만 해결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비장애인처럼 문화를 향유하고 표현하는 권리를 가진 똑같은 인간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 입장에서 문화권이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지, 다양한 문화혜택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장애인 문화복지 증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장애인 전용 문화공간을 확보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각종 문화활동 관련 시설을 정비해야 한다. 그 시설에 맞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이 보호자가 아닌 비장애인 친구와 아무 걱정 없이 영화관에 가고 미술관에 가는 차별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윤혜빈 울산 동구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