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제의 독서공방]이겨내지 말고 그냥 적응하는 것
부는 바람에 나무는 저항하겠지만 부러지는 가지와 낙엽을 어찌하지 못한다. 땅속에 뿌리를 박고 견디며 바람 속에 자신을 맡겨놓는다. 그렇게 바람에도, 폭우에도, 찌는 해와 칼날 시퍼런 냉기에도 적응하며 살아간다. 뒤틀리고 거칠어지면서도 새잎을 내고 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삶도 자연임을 새삼 느낀다. 누가 삶의 이기적인 바람을 멈추랴. 그저 적응해가는 것, 이것도 순리라 부른다.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작가 클라라 뒤퐁모노의 <사라지지 않는다>(필름 펴냄)는 2021년에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언론과 문단에서 뜨거운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한 가족에게 태어난 ‘부적응한’ 아이로 인해 가족의 삶이 변해가는 이야기이다.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외적 내적 몸부림을 치며 적응해가는 것, 순응하는 것, 마침내 삶의 순리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화자는 집안의 담벼락을 이룬 ‘돌멩이들’이다. 담담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장애아를 지닌 한 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장애아 ‘부적응한 아이’는 영영 사라지고 마는데 가족은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떼어놓지 못한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 반대정신으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다. 진정한 치유는 아픔을 충분히 지니고서 뒤틀리거나 상한 자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 흔적을 지닌 하나의 덩어리로 적응해가는 것이 가족이며, 아름답고 거룩한 자연의 이치더라.
어느덧 12월이다.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설령 작품 배경인 프랑스 세벤 지역에 몰아치는 바람과 폭우를 만나 무언가를 잃었을지라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생채기와 흔적에 우리가 적응함으로 과거는 언제나 점점 밝아진다. 하여 현재도 밝음이다.
설성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