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소통과 지도력을 화두로 삼는 이유

2022-12-23     경상일보

트루먼은 스스로 생각했듯이 ‘우연히’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능력과 대통령의 책무 사이에는 간격이 컸다. 1948년 대선 때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정치인의 잠재력과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한 채(23%) 쫓겨나듯 퇴임했다.

트루먼은 루스벨트와는 달리 소련과 공산주의, 민족해방운동과 소통을 의도적으로 중단했으며 국내 정치적 반대자들과도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 트루먼의 판단과 선택은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과 행정부의 입장과 시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정책 결정은 여느 행정부 못지않게 토론과 조율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정책은 결국 트루먼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트루먼의 성격과 세계관을 주목하는 이유다.

트루먼의 성격과 세계관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고 대통령이 된 이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존재감 혹은 권위를 확인하려는 욕망이다. 그는 8세부터 안경을 써서 친구들과 거친 운동을 할 수 없었고 늘 소외되었다. 병을 얻어 수개월 동안 팔다리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트루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트루먼은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 근거와 처벌 기준을 성경으로부터 유추했는데, 십계명에 따라 ‘범죄에는 항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편견과 아집이었고 더구나 이중적으로 적용되었다. 친구나 우호 세력에게는 절대적인 옹호로, 적이나 적대 세력에게는 가혹한 타격으로 말이다.

정치적 빚을 진 고향의 거물이 탈세로 15개월 형을 받았을 때 트루먼은 그와 절연하기는커녕 공화당의 마녀사냥이라 비난했다. 측근의 무능과 부패를 눈감아 주기도 했는데, 술고래이자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맥그래드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집착은 적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맥아더를 “우둔한 **식”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냈고, 아이젠하워가 전쟁을 ‘명예롭게’ 종식하겠다고 하자 “창피스럽고 비열한 짓”이라 비난했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역사인식이다. 트루먼은 13세 때 인디펜던스 공립도서관 책을 거의 섭렵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는데, 주로 전기나 정치사를 탐독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어떤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으며 대통령직이 감옥이든 지옥이든 영웅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 생각했다. 트루먼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반복되며 역사가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한다고 믿었다. 1차 대전 이후 적색공포가 미국을 휩쓸고 공황이 찾아왔던 것처럼, 2차 대전 이후에도 그럴 것으로 내다보았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타협과 대화 대신 적대와 대결을 선택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이다. 인디펜던스 특유의 인종주의가 몸에 배어 있던 트루먼은 영국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혐오했다. 1차대전 이후 독일인은 “심장도 영혼도 없는 **들”이 되었고, 2차 대전 이후 일본인은 “야만스럽고 잔인하고 광적인 본성을 지닌 **들”이 되었다. 트루먼은 미국이 특별한 나라이며 신으로부터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을 부여받았다고 믿었고, 미국의 해외팽창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전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요컨대 트루먼의 병적인 존재감 확인 의식, 순진한 역사인식, 편협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결합해 시대가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노력과 끈질긴 대화 대신 손쉬운 불소통과 상처뿐인 대결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불소통’의 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정부와 국민 간은 물론이고 국민 사이에서조차 불신이 깊게 깔려있고, 이기적 이익 추구나 무도한 행위가 묵인되거나 당연시되는 퇴행적 풍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성실한 소통과 창조적 지도력이 절실한 까닭이다.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