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종교건축과 울산만의 공간 만들기

2022-12-27     경상일보

올해 성탄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3년 만에 전세계 성당과 교회에서 참석인원 제한 없이 성탄 의식이 거행됐다. 이 장면들은 TV를 통해 보여졌는데, 현장에 가지 않아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따뜻함과 간절함과 희망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종교건축 공간을 완성하는 요소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런 생각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이 모이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텅 빈 종교건축물들을 마주할 일이 많다 보니, 사람이 없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훌륭한 건축물을 사진에 잘 담아내어 기록해 두고자 했던 건축전문가의 욕심에, 사람이 적은 시간을 골라 건축물을 찾아가서 찍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종교건축은 응당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없는 순수한 건축공간 자체만 오롯이 사진으로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막상 사람이 사라진 건축공간을 마주한 지 3년 만에 사람으로 가득한 성당과 교회의 모습을 보는 순간 종교 공간의 완성은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이구나 라는 깨침을 얻게 되었다.

전 세계의 훌륭한 종교건축물들은 여행객의 필수 방문코스이자 인스타그램의 핫플레이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유명한 성당과 교회는 관광객이나 결혼식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들도 가끔 들리는데, 나는 이번 성탄절의 예배 장면을 보면서 그러한 쓰임 또한 종교건축의 쓰임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상에서 가장 실용적인 건축을 뽑으라면 단연 주거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주거공간에 대한 관심은 경기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늘 우리의 주요 관심사로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종교건축은 주거공간 만큼이나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면 매일의 일상에서 희로애락을 마주하며 살고 있고, 이런 순간마다 그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예를 들어, 종교와 상관없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교회나 성당을 찾아 성탄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눈다. 석가탄신일에는 사찰을 방문해 함께 기쁨을 나누고 한해의 복됨을 기도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종교건축은 우리의 필수재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사람의 마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지라, 훌륭한 종교건축을 방문하다보면 자연히 성스러운 공간에서 평소 소원하던 마음속 기원들을 되새기고 주변의 좋은 자연환경이 있다면 그 곳에서 하루 일상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런던에서 석사를 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대학원 수업을 했던 캠퍼스와 수업을 마치면 기숙사 들어와 밥먹고, 과제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었던 공동 부엌이 제일 재미있는 공간이었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새해에 집에 못가고 남아 있는 친구들끼리 생폴 성당에 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미사를 따라 하며 제발 무사히 학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 성당 안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종교건축물들 중 나라에서 인정받은 건축물들은 문화재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는 매년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데, 가끔 이 비용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민생이 어려운데 문화재 보호에 들이는 비용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재를 쓸 수 없는 박제된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문화재를 알리고 방문해서 일상과 다른 의미있는 장소로 만들게 된다면, 오히려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자원이 된다. 문화재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 공간으로 기억되어서 그 건축물에 더 애착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에 한복을 입고 방문해 사진을 찍고, 우리나라 유명사찰을 찾아가 템플스테이를 하며 알 수 없는 기도를 함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울산에는 어디에 그런 모습을 만들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이제 울산도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반드시 그 장소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타지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울산만의 공간 만들기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수은 울산과학대학교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