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동지를 잃는 마음

2022-12-28     경상일보

그날 따라 수업은 고되었다. 오후 내내 정신없이 움직이다 학생들을 보내고 마침내 의자에 앉았을 때, 직장 상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들었다. 관내 경조사 공지도 아닌 뉴스 속보로 날아든 소식이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학년 회의를 하러 갔다.

그의 페이스북 마지막 글은 고작 7시간 전에 올라온 것이었다. 바로 전 날의 일정이 정리된 글 아래로 최근 참석한 행사들이 빼곡히 보고되어 있었다. 담벼락을 훑어보는 사이 애도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듯 했다.

한동안 교육청 홈페이지를 보면서도, 공문서 속 ‘울산광역시교육감 귀하’라는 글자를 보면서도 마음이 시큰했다. 그러다 문득 이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의문이 들었다. 조직의 수장이었던 그의 죽음 앞에 개인적인 친분도 없는 일개 직원인 내가 왜 이리도 슬픈 걸까. 며칠이 걸려 찾아낸 이유는 다소 우스웠다. 내가 교육감의 편이었다기보다는 교육감이 내 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울산교육청에 몸담고 있었던 12년 중 최근 4년이 가장 일할 맛이 났다. 내가 느끼고 있던 문제가 교육청 시책사업이 되었고, 예산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에 딱 알맞은 돈이 내려왔다. 교육청에 출장을 갈 때마다 변화를 발견했다.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생겼고, 삭막하던 교육청 건물 내 곳곳에 소모임 공간과 갤러리, 녹색 식물들이 들어서 생기가 돌았다. 전국 단위 연수에서 다른 지역 선생님들을 만날 때면 채식급식과 성교육 집중 이수제를 자랑했다.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교육감 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지난해 이맘 때에는 본지에 쓴 교단일기 두 편이 그의 페이스북에 공유되기도 했다. ‘일상회복 학급운영비 사용 보고서’와 ‘교육복지의 결실’이라는 글이었다. 두 번째 칼럼에는 “감사합니다. 더욱 효능감 있는 교육복지 정책을 고민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괜한 이목을 끌까봐 그 글 밑에 댓글조차 달지 못했지만 화면을 갈무리해 여태 간직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당시 그와 나는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존경할만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나마 그런 귀한 인물들은 동시대를 오랫동안 함께 보내주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그렇게 느낀 사람들이 그랬다. 운명이라는 것이 적잖이 야속하기도 하다가 곧 마음이 아리다. 동지(同志)를 잃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망설이다 결국 조문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 글로나마 서툰 마음을 전한다.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고 묵묵히 진실되게 일하셨던 노옥희 교육감님의 명복을 빈다.

이민정 온남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