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상사의 말-지시, 의견, 농담
저는 매월 1일 전 직원들에게 ‘CEO 레터’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지난 11월에 보낸 편지 ‘여러분이 하는 일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를 요약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회사의 회장이 본사에서 어느 간부사원을 만나자 ‘자네 아직 여기에 있어?’라고 했다는 거죠. 그러자 바로 사업소로 발령이 났대요. 그러다가 회장이 며칠 후에 사업소 순시를 나갔다가 그 사원을 만나 ‘아니 자네가 왜 여기에 있어?’라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사원은 다음날 바로 본사로 복귀되었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사장이나 윗사람의 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닌가요? 윗사람이 하는 말은 크게 세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지시고, 둘은 의견이고, 셋째는 농담일 것입니다. 지시라면 따라야겠지요. 그렇지만 의견이라면 경청하되 담당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해야 합니다. 윗사람의 의견도 n분의 1로서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그리고 농담이라면 웃고 말아야 하고요. 더 나아가 지시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심사숙고해 그 지시에 따른 결과를 검토해 봐야 합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생각되면 다시 재고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여전히 같은 지시를 한다면 그때는 따르는 것이 맞겠지요.
제가 검찰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장검사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형사부 부장검사는 휘하에 검사 6~7명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들이 경찰에서 올린 사건들을 검토해 결정을 내리고, 결재를 상신하면 부장은 그 검사들의 의견을 검토해 결재를 해 주는 것이 일입니다. 부장검사는 당연히 휘하 검사들이 올린 모든 사건의 기록을 일일이 다 읽어볼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과거의 사건 처리 경험상 대부분의 사건은 결정문만 보고도 또는 중요 부분 기록만 간단히 살펴보고도 결론이 맞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건은 그 결론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록을 꼼꼼이 다 읽어보고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이런 점이 있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는 취지로 다시 내려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결론을 바꾸어 결재를 올리는 검사가 간혹 있습니다. 이때 부장검사는 그 검사가 무서워집니다. 아랫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 사건의 책임자는 그 검사입니다. 그런데 부장이 이런 부분도 있지 않냐고 한다고 결론을 바로 바꾸어 버리면 어떻게 믿고 사건을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부터는 그 검사가 담당하는 사건은 일일이 기록을 다 봐야 합니다. 밉지요.
저는 직원 여러분이 맡은 일의 주인이라는 자세로 일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윗사람의 지시와 의견을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기를 바라고요. 구체적인 사정에 대해서 모르는 제가 어떻게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아이디어 차원에서 또는 의견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던진 말을 그대로 따라 버리면 저는 여러분들이 무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밉고요.
이와 관련해 윗사람에게 보고를 할 때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경우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을 때 보고나 결재 그 자체에 대해 신경을 씁니다. 복잡한 사정이나 고민은 숨겨두고 결론만이 옳은 듯이 보고하게 되고요. 그래서 윗사람이 그러자고 하면, 결재를 받았다고 그대로 시행하지요. 검사들은 이런 행위를 결재를 편취(騙取)했다고 합니다. 사기친 것이란 말이지요. 여러분이 그 일의 주인입니다. 사정을 잘 정리해서 윗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결재를 편취하려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고민을 같이 나누어 더 정확한 결론을 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윗사람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그것들이 조율되어 더 발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가오는 계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