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바둑과 정치
바둑이론은 인생과 정치에서도 한번쯤 새겨볼만한 대목이다. 바둑은 흑돌과 백돌을 서로 교대로 두어 집을 많이 차지하는 쪽이 이기는 두뇌 스포츠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아시안 게임에는 바둑이 정식종목이다. 대학 바둑학과도 있고, 온라인 수강생들도 많고 열정적이다. 바둑은 뇌를 활성화시켜 두뇌 발달에 좋고, 계산과 암기, 기억력이 필요하므로 치매예방에도 좋다. 싸움은 끊이지 않고,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삼국지에도 군사 전략에 바둑판이 종종 등장한다.
영화, 드라마에도 바둑 장면이 나오면서 신의 한수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책략이 오묘한 정치적 의미가 많이 담겨있다. 이처럼 바둑이론이 정치활동과 너무나 흡사한 점이 많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번째로, 바둑자세의 핵심은 욕심 금물, 겸손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콩밭이 더 넓어 보이는것은 욕심이다. 바둑을 두다보면 자꾸만 상대의 집이 커 보이고, 두렵기만 하다. 크든 작든, 욕심을 내면 바둑판 전체를 그르친다.
겸손하지 못하면 대부분, 착점에 실수를 범하게 되고 패배를 한다. 정치 행보도 욕심이 과하면 도로 뺏기고, 겸손치 못하면 지지자들은 돌아선다. 둘째, 한판의 바둑은 철저히 상대의 약점을 살피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진영이 커져 있다. 정치 역시 전방위적으로 상대의 흠집을 포착하여 굴복시키고, 우위를 점하려 한다.
셋째, 바둑은 성동격서, 잡고 싶은 반대쪽을 건드린다. 이쪽에 소리나면 저쪽을 봐야 한다. 정치도 몸통을 공격하기 위해, 깃털이나 주변을 자꾸 건드리고 파헤친다. 넷째, 강한 돌엔 약하게, 약한 돌엔 강하게 둔다. 정치판도 강한 권력엔 굽히고, 약한 권력은 짓밟는다. 강자에겐 아부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비열하고 냉정한 권위주의자들이 많다.
다섯째, 바둑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실리와 세력, 이쪽과 저쪽의 이득을, 한수 한수 둘때마다 선택해야 한다. 정치도 줄곧 선택에 부딪힌다. 정의와 불의, 협의와 독단, 다수와 소수의 이득을 고려해야 한다. 여섯째, 상대돌을 잡아야만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잡지 않아도 집으로 이기면 된다. 하수의 습관은 꼭 상대돌을 잡으려 한다. 정치도 상대를 멸문지화, 도륙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이겨야 한다. 저급한 정치인은 꼭 상대를 패가망신 시키려 한다.
일곱째, 바둑은 발생될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한대이다. 뜻밖의 뒤통수에 당황하고, 이런 경우 저런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돌을 두어야 할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계산능력, 직감, 평정심, 침착, 겸손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게임이다.
정말로 수많은 변화와 오묘함과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어, 반상(바둑판 위)을 인생드라마에 비유한다. 정치에서도 평정심을 잃고 흥분하거나, 침착하지 못하고 즉흥적 반응에 휘둘려 기회를 날려 버리는, 이런 저런 경우의 수가 무수히 많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기복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어찌 보면 곡절 많고, 항상 구밀복검이 있는 정치 자체도 드라마이다. 여덟째, 실컷 잘 두고도, 사소한 한수에 패망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도 잘 처신하다가, 경박한 언행에 송두리째 무너지고 추락하는 일이 생긴다.
바둑과 정치는 타이밍이다. 바둑과 정치는 생물이고 끊임없이 변한다. 서둘러도 망설여도 안되는 타이밍이 승패의 요소이다. 바둑과 정치는 두려움이 패배이다. 내부의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다. 두려우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실수가 많아진다. 두려움을 느끼면 진행하지도 못하고 혁신도 못한다.
바둑은 정석을 무조건 따르는게 아니라, 주변 배석에 따라 흐름을 잘 타야 된다. 정치도 고정관념을 벗어나, 주변 정세에 따라 전체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능력이다. 내 입장에서 두면 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두면 이기는 바둑판의 이론을 정치판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박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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