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들꽃처럼

2022-12-29     경상일보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하다’라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옛말이 되었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 2022년이 서럽게 저물어 간다. 서럽다는 것은 제대로 이루어낸 것이 없다는 실토이자 하소연이고 넋두리다. 연초에 호기롭게 새웠던 그 많은 계획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실천에 옮겼을까? 딱히 할 말이 없는 걸 보면 올 한해도 신통치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엿보이고, 생의 잔고 만 축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 뭐 있남? 그냥 재미있게 살면 되는겨”라던 어느 개그맨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즐겁게 살지도 못했고 한해살이풀처럼 세상에 내놓은 실한 열매 하나 없다. 그저 삼백예순다섯 날이 겨울바람에 낙엽처럼 흩어진 것만 같아 씁쓸하고, 쓸쓸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다. 세상에 등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 막고 코 막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숲과 가까워지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별함을 바라던 일상이 평범함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은 것만으로도 진짜 고마운 일이다.

숲에 들면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모나고 거칠었던 생각들이 부드럽고 순해지고 부족하고 불편했던 것들은 여유로움으로 채워진다.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숲,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있다.

저녁 무렵 석양을 닮은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를 보거나 노랗게 익은 향기에 이끌려 모과 열매를 만나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켜오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홍시 하나, 모과 한 개를 가지 끝에 매달기 위해 수많은 비에 몸을 적시고 숱한 바람에 몸이 흔들렸을 것인데도 당당하게 자기 열매를 세상 속으로 드러낸다. 그런 당당함이 오히려 남 탓하고 불평만 해 온 지난날을 부끄럽게 만든다. 세상에는 여전히 내가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훨씬 많다. 꽃을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들꽃은 어울려 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들이 어울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천상의 들판으로 착각할 정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어울림의 갖춤이다. 들꽃들은 일부러 자신을 돋보이려고 시선을 사로잡거나 화려한 색으로 미혹하지도 않는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올 한해는 초선에서 재선 시의원으로 다시 의회에 입성했고, 행정자치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개인적으로 큰 영광을 누렸다. 초선 때 4년간 교육위원회 활동만 하다가 울산시의 머리와 심장 역할을 하는 핵심 부서를 관장하는 행정자치위원장을 수행하면서 울산을 더 넓고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울산의 희망과 시민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사당 안팎에서 온 힘을 기울였고, 새해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을 지키고, 함께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의 대사처럼 꿈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언제라도 꿈을 꾸는 것을 잊지 말자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다. 새해 계묘년은 검은 토끼의 해이다.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 않은가. 꿈을 꾸며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에게 후회도 후환도 없다. 2023년 새해가 들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며, 들꽃의 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새긴다.

김종섭 울산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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