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에 얽힌 의미 살펴보니…]친근한 이미지의 토끼,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과 번성 상징

2023-01-02     전상헌 기자

올해는 육십 간지 가운데 40번째에 해당하는 해인 계묘년(癸卯年)이다.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뜻해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토끼는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네 번째다. 방향은 정동(正東), 시간으로는 오전 5시에서 오전 7시,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방위신(方位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그래서 양기가 충만한 곳에서 본격적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계절적으로 봄에 해당한다. 더욱이 농경사회에서 2월은 농사일이 시작되는 시기로, 풍년을 기원하는 달이다.

이에 토끼는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과 번성을 상징하고 달과 여성, 불로장생을 의미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달 속의 ‘옥토끼’는 절구로 선약(仙藥)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년을 사는 영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검은 토끼의 의미는 만물의 번영과 큰 성장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즉 인류의 번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토끼의 존재다. 그래서 토끼는 5만 년 전부터 인류의 사냥감으로 단백질 공급원이 됐으며 토끼털은 토시, 모자, 배자 등 방한용 의복 재료와 함께 고급 붓을 제작하는 데도 활용됐다. 1600년 전 고구려 고분 벽화(덕화리 2호분), 통일신라시대 수막새, 고려시대 동경(銅鏡)에서도 토끼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창덕궁 대조전 굴뚝과 경복궁 교태전 뒤뜰의 석련지 등 건축물에도 토끼 형상이 새겨져 있다.

실생활에서도 ‘토끼 같은 자식’ ‘놀란 토끼 눈을 한다’ ‘놀란 토끼의 눈이다’ ‘토끼 꼬리만 하다’ 등 토끼의 생김새와 관련해서 친숙한 이미지로 자주 표현한다. ‘엽기토끼 마시마로’나 ‘미피’ ‘오버액션 토끼’ 등 다양한 토끼 캐릭터가 여러 대중매체에서 주목 받기도 한다.

지명에서도 토끼가 들어간 곳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토끼와 관련한 지명은 158개 정도 된다. 풍성함과 왕성함을 상징하는 토끼가 마을의 번창함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에 지명으로도 사용한 것이다.

이 가운데 ‘작은토끼재’처럼 토끼가 들어가 있는 지명은 81개, 지명의 한자에 토끼 토(兎)자가 들어가 있는 지명은 39개, 토끼 묘(卯)자가 들어가 있는 지명은 6개다. 이 밖에 지명에는 토끼를 의미하는 글자가 들어가 있지는 않으나 지명의 유래에 토끼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지명이 32개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에서도 토끼와 관련한 지명이 1곳 있다.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주암마을이 토끼 형상의 바위가 있어 주암이라 불린다고 한다.

마을 이름에 토끼가 들어간 것은 농경 생활을 주업으로 하던 우리 조상들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산의 상징으로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토끼지만, 현실적으로 토끼는 귀엽고 작은 체구를 가진 초식동물로 호랑이 등 육식동물을 피해 다니는 나약한 존재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설화에서만큼은 토끼를 약한 동물이지만, 선하면서 민첩하고 영민한 동물로 묘사했다.

특히 호랑이가 힘센 동물의 상징이라면 토끼는 약한 동물로 상징되지만,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지혜와 꾀를 부려 위기를 극복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설화 속의 토끼는 힘없는 민중을 대변해 권력자를 재치로 호기롭게 골탕 먹이는 민중의 승리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토끼 같은 약자가 강자에게 꾀와 기지를 발휘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는 바람을 대변하고 있다.

민화에서도 한 쌍으로 된 두 마리의 토끼가 자주 등장한다. 이 두 마리의 토끼는 금실 좋은 부부처럼 다정하고 화목한 관계를 상징한다. 실제 토끼는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동물이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혼자 있으면 불안감을 느껴 수명이 단축되고 예민해져 폭력성을 띤다.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을 때,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표현한다. 원래 속담은 ‘토끼 두 마리를 쫓다가는 다 놓친다’라는 의미로 부정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다’와 같이 한 번에 두 가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새로운 시대적 사고 발상으로 ‘두 마리 토끼’가 위기를 기회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토끼 이미지가 변화하듯 지혜와 꾀를 부려 위기를 극복하는 토끼처럼 도약하는 올해를 기원한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