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2023년을 맞이하며 나이에 대한 단상
‘새 해가 되면 한 살 더 먹는다.’ 이제는 이 말도 옛말이 되었다. 올 해 6월28일 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에 따라 ‘만나이’로 통일된다. 올해는 새 해가 되어 한 살 더 먹었다가 6월28일부터 다시 한 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내년부터는 해가 바뀌어도 나이를 당연히 한 살 더 먹는 것은 아니고 생일이 지나야 나이가 올라간다. 태어나 6개월 지난 아이는 0세 6월이 나이가 되고, 같은 학년 같은 반에 있어도 생일이 지났는지에 따라 저마다 나이가 다를 수 있다. 세상은 이렇게 또 작은 변화를 하고, ‘옛 날에는’이라고 이야기 할 소재가 하나 더 늘어났다. 어릴 적에는 한 살 더 먹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평가받는 것이 마냥 좋다. 사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기분좋은 소위 ‘정신승리’다. ‘정신승리’라도 좋으니 새 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본다.
우리 민법 제4조는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고, 같은 법 제826조의 2는 미성년자가 혼인을 한 때에는 성년자로 본다고 각 규정하고 있다. ‘成年’ 말 그대로 나이가 찼다는 의미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온전하게 혼자서 법률행위를 할 수 있고 그 책임도 온전히 혼자 몫이라는 의미다.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혼인을 했으면 온전히 혼자 가정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형법 제9조는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해 형사미성년을 규정하고 있다. 너무 어린 사람은 잘못인 줄 모르고 잘못을 하니 그 잘못을 탓할 수 없지만 만 14세가 되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국가의 형사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나이’를 얻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스스로 더 온전해져 가야한다는 것은 아닐까.
필자의 생일이 1월1일이니, 새로운 만나이로 계산해 나이를 아무리 줄여봐도 만43세가 된다. 온전히 삶에 책임을 져야할 민법상 성년자가 된지도 24년이 흐른 것이다. 나의 삶은 그 나이를 얻어가는 시간만큼 성숙해지고 온전해지고 있는걸까? 예전 성현들의 말씀을 적은 책을 읽다가 ‘사람 나이 40이 넘으면 죽을 보따리 챙기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사람 나이 40이 지나면 욕망에 휩쓸려 다닐 것이 아니라 삶이 유한함을 알고 챙겨야 할 마음과 놓아야 할 욕망을 잘 구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너무 각박하다 싶기도 하다. 나이 40이면 바둥바둥 앞뒤없이 살다가 이제 겨우 세상이 이렇구나 사람이 이렇구나 눈을 떠가는 단계인데 벌써 죽을 보따리를 준비해야 한다니…. 하지만, 그만큼 유한하고 짧고 짧은 것이 삶이니 그 시간도 넉넉지는 않은 것 같다. 죽을 준비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 잘 보고 그 마음 잘 쓰는 법을 배우고 그 것을 실제 실행해야 하며, 유한한 내 삶에서 좋은 인연 잘 맺고 선연은 더 키우고 악연은 선연으로 돌리려 노력해야 하고, 죽는 날 ‘나 잘 살다 가네.’할 수 있을 정도로 미련없이 하나 둘 마음과 사람과 일을 챙겨가야 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바쁘긴 바쁘다.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나이만큼 현명함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쌓이는 성숙한 ‘나잇값’을 할 수 있으려면 부단한 자기 성찰과 노력 그리고 욕망을 다룰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타인의 삶을 같이 고민할 때가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이루지 못한 욕망과 타인과의 비교심에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나이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소위 ‘수자상’을 내어 지금 껏 잘 살아왔던 사람들도 갑작스럽게 사람관계가 흐트러지고 일이 망가지는 ‘나잇값’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될 때가 자주 있다. 타산지석. 나이를 얻었으니 더 현명해지고 성숙해질지언정 조급해하거나 수자상을 내지 말자. 삶이 힘들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한 해 한 해 더 현명해지고 성숙해지려 노력하다보면 그 속에서 얻는 삶의 재미가 클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2023년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이만큼 성장해가는 기회라는 생각에 설레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설레는 2023년이기를 바라본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