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1년, 안전관리 경각심 고조
2023-01-20 이형중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은 앞다퉈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와 같은 임원급 직책을 신설하고 안전 담당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위상을 격상하는 등 대비에 나섰다.
사업장 안전이 다른 조직관리의 부수적 차원을 넘어 기업 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나오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게 한 법 조항을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CSO에게 안전에 관한 책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사주나 CEO 등의 처벌 가능성을 회피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해석이다.
고위험 산업으로 꼽히는 업계는 특히 긴장한 상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맞았다. 산재사고가 잦은 건설업계는 법 시행 직전 현대산업개발(HDC)의 광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대형 사고가 잇따른 터라 주말·공휴일 작업을 제한하는 등 현장 안전관리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전국 사업장에서 크고 작은 인명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와 대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부 기업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인명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를 받으면서 국민적 공분까지 산 끝에 안전의식을 뒤늦게 강화하기도 했다.
일부 대기업은 중소기업들의 사업장 안전관리 지원에 나섰다.
많은 중소기업이 협력업체로서 대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관리 역량을 갖추기에는 인력·조직상 한계가 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보유한 대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0월 중소기업 안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비영리 공익법인 ‘산업안전상생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안전관리 컨설팅, 위험공정 발굴 및 설비 안전진단, 안전 전문인력 양성 교육 등을 통해 중소기업이 독자적 안전관리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들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들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이 재해 예방을 통한 노동자 신체와 생명 보호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처벌을 주목적으로 삼는 법이라며 대폭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법 시행 이후 수사 사례를 분석한 결과 CSO를 둔 기업이더라도 대표이사를 안전의무 이행의 주체로 보고 주된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법 시행 이후에도 재해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것은 재해 예방이라는 애초 법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뜻인 만큼, 책임 주체로 CSO를 인정하고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대한상의는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처벌 대상으로 적시된 경영 책임자 등의 범위가 모호한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강한 처벌을 부과하는 법인 만큼 처벌 대상이 명확해야 하며, 중대재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위임받은 CSO를 경영 책임자 범주에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게 전경련 의견이다. 석현주기자·일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