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플라스틱 속에서 태어나 플라스틱 속에서 죽는 시대

2023-01-25     경상일보

1907년, 처음으로 고분자물질인 플라스틱 화합물이 만들어진 이후, 지난 100년 동안 플라스틱은 목재 소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켜 왔다. 또한 금속, 석재, 가죽, 유리 등 수많은 고전적인 재료들을 빠르게 대체했고 일상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질로 성장하면서, 철기시대를 이은 플라스틱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인간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분해되어 해가 없는 자연의 구성 물질로 되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물질이다. 이미 알려진 태평양 상의 한반도 16배 넓이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도 심각한 문제지만, 남극 부근 바다 속까지 미세플라스틱의 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최근의 또 다른 연구조사에 의하면, 북극에서 내리는 눈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모든 생수병(PET병)에서 상당량의 초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또한 종이 티백은 사용 중 티백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티백 종이를 PP로 코팅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사용해 우려낸 차 한 잔에서 16㎍이나 되는 초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보고한 논문도 있다. 삼각티백(나일론 소재)은 더욱 놀라울 정도로 많은 초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종이컵(PE 코팅)에서도 초미세플라스틱이 용출되어 나온다는 것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발표한 바도 있다. 현재의 기술로는 이러한 초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내어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인간은 플라스틱 속에서 태어나 플라스틱 속에서 삶을 마감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뿌린 씨앗이 독이 든 열매로 다가온 것이다.

최근, 몸에 들어온 초미세플라스틱(나노플라스틱: 1㎍ 이하)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몸 안에서 이물질로 작용할 경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의 한 연구팀은 22명의 일반인 중 17명의 혈액에서 초미세플라스틱(PET)이 발견되었다는 놀라운 결과가 도출된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비하면 얼마 전 죽은 향유고래 뱃속에서 22㎏의 플라스틱이 발견된 사건은 별로 놀라운 것도 아니다. 의과학자들은 몸 안에 들어와 축적된 초미세플라스틱은 뇌경색, 폐섬유화증 등의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비엔나 의과대학 연구팀은 대변 속 미세플라스틱을 확인하면서, 이는 장내 염증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이것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반복될 경우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인류는 언제나 뒤처리 문제를 자연에 맡겨 왔다. 자연에 없었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이를 편리하고 풍족하게 사용하고는 그 처리는 자연에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정화 능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자연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임계점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거론되고 있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얻은 실험적 생분해 조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계 속에서 ‘56~60℃, 180일 이상’이라는 조건을 갖추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 다른 안전한 친환경 재료로 바꾸는 노력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구의 땅과 바다, 그리고 공기 중에까지 퍼지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대책은 한 두 국가가 노력한다고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UN에서 선도한 기후변화위기에 대한 파리기후협약과 같은 범지구적 대책만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20일 환경부 주관으로 8개 관계 부처가 참여한 ‘미세플라스틱 다부처 협의체’를 출범시키면서,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모두 기대해 보기로 하자.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