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88)]통도사의 봄 - 紅梅

2023-01-31     이재명 기자

설을 전후해 혹한이 몰아치더니 입춘을 앞두고 다시 포근해졌다. 통도사 영각 앞 홍매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370여년 통도사 한켠을 지켜온 홍매의 이름은 자장매(慈藏梅).



영축산 통도사 영각 앞, 자장대사 닮은 한 그루 고매(枯梅)/ 한 해를 기다려 오늘 아침 환하게 불 밝혔다/ 새벽부터 찾아온 이들이 저마다 서둘러 카메라에 담아간다/ 그들이 간밤에 지은 죄의 무게만큼 마음 내려놓고 간 뒤/ 비로소 영각 안 부처님도 매향공양 받으며 홀로 미간 붉히신다 ‘통도사 자장매­탐매시(探梅詩)1’ 전문(이구락)
 

통도사 홍매는 2월 초순에 피기 시작하는데, 그 시기가 입춘과 맞닿아 있다. 정일근 시인은 “북풍한설 찬 날씨에 이를 악물고 꽃을 피우려는 것에 마음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홍매가 꽃을 피워야 통도사의 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고 말한다.

매화는 이름도 가지가지다. 꽃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雪中梅), 달 밝은 밤에 보면 월매(月梅), 옥같이 곱다고 해서 옥매(玉梅), 향기를 강조하면 매향(梅香)이 된다. 이 중 ‘월매도(月梅圖)’는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한다.

월매가 그림의 주제가 된 것은 퇴계 만큼이나 매화를 사랑했던 중국 북송의 시인 임포의 시(詩) 때문이다. 임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매화를 아내로 삼았다. 임포의 매화 시는 여러 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시의 두 구절은 북송의 대문호 구양수가 절찬한 것이다. 성근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에 비치고(疏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은은한 향기 황혼의 달빛 속에 떠도네(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이 시의 ‘암향부동(暗香浮動)’은 저녁무렵 매화 향기를 말하는데, 붓글씨에 자주 인용된다.

매화 마니아로 유명한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그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매화 화분과 마주 앉아 대작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1000원짜리 앞면에 퇴계 선생의 얼굴과 함께 매화가 그려져 있을까. 바야흐로 탐매객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드는 계절이다.


얼음 밑에 개울은 흘러도/ 남은 눈 위엔 또 눈이 내린다./ 검은 쇠붙이 연지를 찍는데/ 길 떠난 풀꽃들 코끝도 안 보여/ 살을 찢는 선지 선연한 상처/ 내 영혼 스스로 입을 맞춘다.

‘홍매(紅梅)’ 전문(김상옥)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