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김기택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핥을 때’
입에서 팔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연약한 떨림을 덮는 손이 나온다
맘껏 뛰노는 벌판을
체온으로 품는 가슴이 나온다
혀가 목구멍을 찾아내
살아있다고 우는 울음을 핥는다
혀가 눈을 찾아내
첫 세상을 보는 호기심을 핥는다
혀가 다리를 찾아내
땅을 딛고 일어설 힘을 핥는다
혀가 심장을 찾아내
뛰고 뒹구는 박동을 핥는다
혀가 나오느라 꼬리가 길다
혀가 나오느라 귀가 빳빳하다
혀가 나오느라 발톱이 날카롭다.
‘할 수 있어’ 엄마가 보내는 여리고 애틋한 응원
몸에서 혀처럼 부드러운 게 또 있을까. 혀로 입술을 핥는다, 입술 끝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는다, 혀로 상처 자리를 핥는다. 혀는 본능적으로 작고 여리고 애틋한 곳을 향한다.
혀는 ‘연약한 떨림을 덮는 손’과 같다. 엄마의 큰 손이 아기의 작은 손을 감싸듯 동물의 어미는 갓 태어난 새끼를 혀로 핥아준다. 새끼 몸에 덮여있는 양수를 제거하고 냄새를 없애 다른 동물로부터 보호한다. 그들은 핥는 행위를 통해 서로 교감을 나눈다. 핥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가깝고 친밀하고 끈끈한 일이다. 그것은 귀에 숨결을 불어넣는 속삭임과 같다.
그런데 시인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의 울음과 호기심과 힘과 박동을 핥는다고 했다. 핥는다는 것은 격려하고 북돋우는 일이기도 하다. 할 수 있어, 볼 수 있어, 설 수 있어, 달릴 수 있어. 몸을 일으키게 하는 응원의 속삭임. 이런 내밀한 일을 하는 혀. 고양이의 긴 꼬리와 빳빳한 귀, 날카로운 발톱을 완성하는 저 부드럽고 까슬한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