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변호사도 해고가 되나요

2023-02-07     경상일보

지난 해 4분기부터 우리가 보통 빅 테크(Big Tech)기업들로 부르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인력을 대규모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경기와 실적의 등락에 따른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이야 일상적인 일일 텐데, 어느 정도이길래 업계의 주목을 끌게 된 걸까.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발표한 해고 규모는 글로벌 인력의 6%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이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메타, 아마존 같이 전세계 시총 상위를 장악한 이들 기업이 최근 해고한 인력은 합산하면 15만 명 이상이다.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고용 중인 인력을 대량으로 해고한다고 하면 좋은 소식으로 해석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를 투자자 관점에서 나스닥 기술 기업들의 불황을 방증(傍證)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기사가 많았다. 쉬운 추론이기는 하나, 이는 현재 진행형인 대량 해고의 구조적 원인과 미국 기술 기업들이 인력을 포함한 자원배분 의사결정에 있어 갖는 폭넓은 재량을 간과한 것이다. 후자는 쉬운 해고와 고용 안정성 간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양보되기 어려운 가치 간의 충돌을 다루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고, 오늘은 전자의 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본다.

2021년 12월10일자 경상시론에서 적었던 것처럼, 미국 경제는 코로나 감염병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위의 기술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늘어난 기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고용을 늘려왔으나, 이러한 수요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감염병이 통제단계에 들어서고, 같은 기간 변화된 기술 트렌드, 즉 인공지능(AI)의 시장성에 대한 확신을 자사의 경쟁력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투자 재원을 조달하는 한 방편으로서 기업의 고용정책을 3년 전으로 되돌리게 된 것이다.

빅 테크 기업의 이러한 움직임은 연관산업에 속한 기업들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기업들 가운데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기업으로 미국의 대형 로펌 굿윈(Goodwin Proctor)이 있다. 1912년 설립되어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주사무소를 두고 있는 굿윈은 2021년말 기준 매출액이 19억7000만 달러에, 소속 변호사 수만 2000여 명에 달하는 세계 20대 규모의 초대형 로펌인데(참고로 한국 최대 로펌인 김·장의 같은 해 매출액은 9억7000만 달러였다), 이 로펌이 올해 초 전체인력의 5%를 해고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감원 사유는 수임 사건의 감소였다. 생명과학과 산업기술 그리고 사모펀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이 로펌은 관련 시장, 특히 기업 간 인수 합병(M&A) 건수가 감소함에 따라 인력 감원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4분기를 제외한 지난해 미국 내 로펌들의 당기순이익이 7.3% 감소했다는 통계를 생각하면, 냉정하리만큼 수익 여부와 고용 규모를 일치시키는 미국기업 특유의 경영 기조는 전문가집단이라는 로펌이라고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성과와 무관하게 정년 고용이 보장되는 공기업이 아닌 매년 실적에 따라 자신이 속한 사업 부문의 존폐가 결정되는 일반 회사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GE의 CEO 잭 웰치가 만들었다는 매년 저성과자 10%씩을 해고(‘fire the bottom 10%’)하라는 경영방침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경험을 한 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나 석유 정제 마진 급등으로 해당 기업 직원들이 깜짝 놀랄 수준의 성과급을 받게 되었다는 미담처럼 손쉽게 알려지지 않을 뿐, 불황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요즘 같은 상황을 겪는 기업들이 고용 유지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는 바다 건너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어서 이 또한 새삼스러울 것은 아니다. 다만 대표적인 고소득 전문직인 변호사라는 직업도,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다지 안심할만한 직업은 못 된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왜 회사가 당신을 고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엉터리로 허들을 낮춘 KPI나 MBO, OKR 같은, 유행 따라 이름만 바뀌는 지표 달성 여부가 아닌, 실체 있는 성과로써 답할 의무만큼은 모든 직장인에게 공평해야 한다. 이 의무를 불이행하였다면, 변호사도 해고가 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