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가치의 전도(價置顚倒)
유달리 추운 한파 속에 설 명절을 정점으로 해 바뀌는 소리로 북적대는가 싶더니 어느새 통도사의 매화가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입춘을 지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무상함이 깊어지는 것은 신체의 노화와 더불어 정신적인 가치들이 변화하여 전도되는 빈자리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은 죽었다’라는 한마디로 인생의 가치를 도덕·종교적 가치에서 자연적 인간 중심의 가치로 전도시킨 니체도 초인 사상으로 이 무상함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하물며 범부들이야 세월의 무상함이 오죽하겠는가.
전통의 겨울철 과일로 수십 년간을 소비율 1위 자리를 지키던 사과가 그 자리를 봄철 과일인 딸기에게 내 주었다는 소식이다. 언론에서 분석하는 이유는 곳곳에 만연한 ‘귀차니즘’ 때문이라 한다. 즉 딸기는 씻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반면에, 사과는 씻고, 깎고, 예쁘게 잘라서 접시에 잘 배열하여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통상 과일은 제철 과일을 선택하여, 모양 좋게 깎고, 자른 정성을 같이 먹는 것인데, 여기에도 ‘귀차니즘’이 스며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식사 때마다 자식들에게 바른 젓가락질과 사과 깎기를 열강하는 부모들이 머쓱해지는 장면이다. 발가락으로 TV 채널을 돌리다 리모컨으로 진화한 것도 ‘귀차니즘’ 때문이니 앞으로 사과의 변신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나태함의 탐닉을 곧 행복으로 생각하는 가치전도가 아닌가 하는 무상함을 지울 수 없다.
미·북 대화 시 트럼프의 특사로 북한을 오가며 김정은을 만났던 미국무장관 폼페이오가 김정은이 “중국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 중국 공산당은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처럼 다룰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회고록에서 전하고 있다. 김정은의 진심인지 립서비스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중국 및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의 반전이어서 다행스럽긴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강대국들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이다. 우리의 군대가 중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진정한 국가의 가치가 전도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이재명 야당 대표가 각종 범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법률가의 식견으로 볼 때 이 대표에 대한 범죄 의혹은 유죄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검찰이 이를 알고도 수사를 중단하면 오히려 직무유기가 될 정도의 성숙한 의혹임에는 틀림이 없다. 거물 정치인들은 포토라인에서는 국민에게 송구함을 표시하고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다음, 밤을 새워서라도 자신의 무고함을 팩트와 법리로 검찰에 설명함이 보통이었다. 반면 이 대표는 포토라인에서는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등 무고함을 설파하고는, 막상 수사실에서는 미리 작성한 의견서만 제출하고 묵비권 행사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하였다. 즉 의혹을 받고 있는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보다 수사의 주체인 검찰의 신뢰성을 정치적으로 공격하여 범죄 수사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신종 변호 방법이 출현한 것이다. 형사 절차의 가치전도가 펼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여당에서는 당 대표 선거가 점입가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년 총선은 보수진영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에 국민이 열망하는 정치개혁, 인재 등용을 위한 공천제도 개혁, 침체의 늪에 빠진 민생과 경제 부활 등의 화두를 둘러싸고 각 세력 간의 경쟁이 치열하여야 함이 보통이다. 이상하게도 유력한 당 대표 후보들 모두가 ‘심봤다’만 외치고 있으니 당 대표 선거가 심마니 대표 선거로 전락한 것만 같다. 여당 대표는 일개 공당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의 행동대장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에 보수와 중도 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소신과 비전을 설파하여야 함에도 산삼만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당 대표 자리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전도 현상이라 하겠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인간사 모든 일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거품처럼 변화하는 것이어서 세월에 따른 가치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나태함의 탐닉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경제적 대박이 행복의 척도로, 오직 권력 추구를 위한 야바위 놀음이 정치를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저질화로의 가치전도는 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