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 조명희 ‘가파도’
섬 속의 섬이라 했고
키가 가장 작은 섬이라 했다
낮은 지붕에서 산 사람은 무덤도 낮아
하늘 아래 목숨 내놓는 일 또한 여여하다 했다
배가 섬의 옆구리에 우리를 내려놓듯
옆 사람이 내게 닿아 신발을 벗는다
맨발로 바닷가를 걷다가
앞에 보이는 섬 하나를 가리키며
나도 저런 섬이 될 수 있을까 물었다
여기 앉아 봐
치마에서 도깨비바늘을 떼 주던 사람이
손바닥을 펴 오래 쥐었던 섬을 보여준다
섬 속의 섬에 든다는 것은
가슴에 돌멩이 하나 매다는 일이라 쉽게 바라볼 수 없었다
해안가의 돌멩이들이
벌겋게 솟구치던 때를 기억하는지 잠시 붉었고
낮은 무덤 하나가
지는 해를 데리고 들어갔다
무릎걸음이 생기는 가파도였다
창파를 견디며 간난 앞에 얽매이지 않는 삶
마라도를 갈 때 가파도를 고민했었다. 우리는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마라도를 택했고 여행은 만족스러웠지만, 이 시를 읽으니 어쩌면 가 볼 수도 있었던 가파도가 그리워진다.
사진으로 본 가파도는 돌담과 청보리밭과 자전거길이 나직, 나직, 나직하게 엎드려 있다. 섬 속의 섬이니, 제주도가 가파도를 품듯 가파도 청보리밭은 가슴에 낮은 무덤을 품었다. 바다를 마주 보는 사람은 아무리 몸을 낮추어도 파도의 일격에 멍이 들기 일쑤다. ‘앞에 보이는 섬 하나’는 마라도일까. 모슬포에서 돈을 빌리면 가파도 그만 마라도 그만이란 말이 있다는데 창파를 견뎌온 삶은 그 간난 앞에 달관하게 되는 걸까.
손안에 ‘오래 쥐었던 섬’은 그리움의 깊이일 테니, ‘치마에서 도깨비바늘을 떼 주던 사람’과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은 참 다정하고 쓸쓸하겠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