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56)]판결은 판사 대신 AI에게?
변방의 작은 나라였던 진(秦)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법가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상앙과 이사 같은 탁월한 법가 사상가와 행정가는 진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고 실제로 주인이 되게 했다. 그런데 진나라는 천하의 주인이 된 지 얼마 못 가서 멸망했다. 법가 때문이었다. 진의 성공은 집중된 권력에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진의 행정과 통치 시스템, 엄격하지만 공정한 법 적용, 그리고 법에 의한 권력의 집중을 공동체 전반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던 현명한 군주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상황에서, 천하통일이라는 목표가 실현된 순간, 법령은 가장 효율적으로 그들의 숨통을 조이고,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다. 법의 적용은 엄격은 했으나 공정하지 못했으며, 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공동체 전반의 이익보다는 사익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본디 법은 지배자가 횡포를 부릴 수 없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돈이나 권력 등을 많이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범죄, 상업 계약 등의 영역에 있어서 모두가 공평한 권리와 책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가. 법이 권력자에 대한 견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국가를 권력자 마음대로 다루고 국민을 권력자에게 철저하게 복종시키는지 하는 현실 권력 장악의 도구에 가까운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최근 50억 무죄 판결이 국민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800원 횡령으로 해고당한 사건과 대비하여 비판되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판사 대신 AI에게 재판을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AI에게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AI가 기존의 판결 결과를 답습하기 때문이란다. 모두 판결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과 법관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조사와 기소의 문제, 곧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 확보와 제대로 된 법 적용이었나이다.
법원과 검찰은 국민의 이러한 비판에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AI에게 판결을 맡겨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판사든 검사든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벌이 공정하면 나라가 바로 서고 상벌이 공정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숱한 역사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