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산업기술박물관을…
1조2000억원→4393억원→3864억원→1865억원→1024억원→1386억원→?.
울산의 숙원 사업인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의 사업비 변동 내역이다. 숫자만 보더라도 국립산박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국립산박 조성 사업은 지난 2011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필요성을 거론하며 시작됐다. 서울 용산에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조성할 계획이었다. 몇 년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울산 대선 공약으로 국립산박 건립을 약속하면서 목적지는 울산으로 변경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기술박물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던 사업은, 그러나 울산시가 예비 타당성 조사 통과를 위해 사업비를 4393억원으로 줄이면서 절반 이하 규모로 축소됐다. 시의 계획서를 받아든 정부는 예타 과정에서 경제성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사업비를 3864억원으로 재차 축소했다. 그나마도 용역을 맡았던 한국개발연구원이 사업비를 1865억원으로 줄이면서 세계 수준은 고사하고 국립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사업 규모가 당초 계획의 15%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지만, 2017년 실시된 예타에서는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기재부는 사업의 경제성이 0.16일 것으로 예상해 사업성이 극히 부족하다고 봤다. 정책성을 최대한 감안해도 통과 기준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친다며 추진 불가 판정을 내렸다.
민선 7기 시는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산업기술박물관을 건립하겠다며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타 통과를 위해 사업비는 1024억원으로 더 줄였다. 민선 8기가 출범하면서 바통을 이어받았고, 1024억원으로는 정상적인 국립산박 건립이 어렵다며 사전 타당성 조사를 통해 사업비를 1386억원으로 소폭 인상했다. 이는 예타 통과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최대치였다.
하지만 이 예산으로는 목표했던 세계 수준의 산업기술박물관은 절대 지을 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는 과학기술박물관인 국립독일박물관은 50개 전시실에 약 2만8000여개의 전시품이 있다. 항공, 선박, 자동차는 물론 탄소중립과 관련된 자료도 전시돼 있다. 한마디로 울산 국립산박의 롤모델이라는 의미다. 만약 현재 예산 규모로 국립산박을 조성하게 되면 국립독일박물관은 고사하고 2011년 개관한 시립 울산박물관 수준을 크게 넘어서기 어려워 보인다. 울산박물관 건립에는 504억원이 투입됐는데, 물가 인상률과 국립산박의 전시품 가격을 감안하면 사실상 시립 박물관 이상의 규모가 나올 수 없는 셈이다.
시는 사업 규모 확정에 극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 만약 1386억원이라는 숫자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해 예타를 통과하게 된다면 울산이 받아들 결과물은 뻔하기 때문이다. 시는 산업부를 설득해 사업 규모를 최대한 확대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규모와 시설로 울산과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역사를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김두겸 시장은 불가능할 것 같던 개발제한구역 해제 문제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과를 내고 있다. 취임 직후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함께 국립산박을 다음 현안으로 제시해 정부를 설득한다면 산업수도 울산의 위상에 어울리는 국립산박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