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장애와 비장애 사이 위험한 줄타기, ‘경계성 지능인’

2023-02-27     경상일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계성 지능인’이 그들이다. 경계성 지능이란 지적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을 말한다. 즉 표준화 지능검사(IQ)상 70~85 사이에 있다면 경계성 지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14%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성 지능인들은 보통 이해력과 상황대처능력, 감정통제능력 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학습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경제적·사회적으로도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적장애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권 복지지원에서 비껴나 있다.

결국 이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경계선 위에 서서 한 발짝 떼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혹여나 줄에서 떨어져 다친다 해도 치유 받을 곳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경계성 지능인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각종 범죄에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내몰린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경계성 지능장애에 대한 낮은 사회인식도 이들을 쉽게 위험에 내모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성매매 등 각종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심각한 수준이다. 언론 등을 통해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경계성 지능인의 피해사례를 접해보면 우리 사회와 그 내부를 지탱하는 법이 얼마나 큰 맹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경계성 지능인은 범죄를 당하고도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논리적인 설명능력이 부족한 탓에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도 쉽지 않다. 결국 명백히 피해를 당했으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니에 빠지는 셈이다. 보호자를 통해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세월에 묻혀버리고 가해자가 법의 테두리를 이미 빠져나가 버려 그 억울함은 고스란히 경계성 지능인 스스로가 짊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건 경계성 지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관심 그리도 법적·제도적 장치마련을 통한 보호체계 확립이다. 범죄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경계성 지능인을 자녀로 둔 각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우리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다. 만 6세까지는 발달재활 바우처 지원 등을 통해 일부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각 개인이나 가정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탓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중구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경계성 지능인의 관심과 지원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제기한 바 있다. 늦게나마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이제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경계성 지능인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관련 조례를 만들고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상위 법령 부재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시의회가 경계성지능인의 평생교육 지원을 위한 조례를 마련했지만 이 역시 교육적인 부분에 국한돼 있을 뿐 그들을 위한 실질적 도움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하루빨리 관련 법안이 국회 등 중앙정치권을 통해 마련돼야 할 이유다.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돼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만 갖추고 있으면 그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출발점이다.

경계성 지능인을 이해하고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조금이라고 덜어 주려는 마음이 모일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훌륭한 파수꾼이 될 수 있다.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는 경계성 지능인들이 사각지대로 떨어져 몸과 마음을 다치고 그 상처가 가슴 속 멍에로 남지 않도록 경계를 감싸는 촘촘한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

박경흠 울산 중구의회 의회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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