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노년의 안전망 확보가 ‘벼리’

2023-03-03     경상일보

벼리라는 말을 아는가.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니 강령(綱領)이니 요강(要綱)이니 할 때 쓰는 강(綱)자가 벼리 강이다. 그물의 위쪽 코를 꿰는 줄이란 뜻이란다. 즉 그물이라는 것은 너무 많은 줄들이 얼기설기 엮어져 있어 일견 보기에 어지럽기 그지없으나, 그 코를 꿰는 줄 즉 벼리를 잡아 당기면 전체가 끌려오게 된다. 이렇듯 복잡해 보이는 여러 현상들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것의 뼈대를 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들로 제시된 이슈들은 다양했다. 거대 정당 양 후보의 부정적인 자질이 주를 이룬 이상한 대선이기는 했지만 사회분야 이슈는 크게 보면 저출생, 높은 교육비, 청년 일자리 부족, 장년 일자리 문제, 노년 복지, 연금고갈, 비정규직 문제, 지방소멸 등이 될 것이다. 각 과제들마다 도대체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한 문제들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니 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데 해결할 수 없다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모든 문제들을 조금씩이라도 해결하고자 예산을 잘 분배해서 대책을 강구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산방식의 점진적 해결방법이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꿰뚫는 벼리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해결이 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벼리를 해결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문제들의 벼리는 없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일견 답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다양한 문제의 벼리가 노년 복지라고 생각한다.

여러 문제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인 복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진정 무서운 것은 나이들거나 병 들었을 때, 즉 힘이 없을 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이다. 힘이 있을 때야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지만 힘이 없을 때가 진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한번 보자.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없어 문제라고 하고, 청년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문제라고 한다. 즉 미스매치가 문제다. 청년들이 왜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것일까. 굳이 백수로 또는 취직준비로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끝내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가는 노년 안전을 확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장년 퇴직후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벌어놓은 것들로는 노후보장으로 모자라니 더 벌려고 하는 것이다. 노후 복지, 연금문제야말로 말할 것도 없는 노후 안전의 문제이다.

더 나아가 저출생이나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과거에는 가장 확실한 노후 복지 수단이 자녀였다. 자녀를 잘 키워놓으면 자녀가 부양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녀가 부양하는 시대는 끝이 난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자녀는 당연히 잘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다. 자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다. 만약에 자녀도 끝내 나이가 들면 국가가 책임져 준다고 한다면 굳이 부담감 때문에 낳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무조건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자녀의 인생은 자녀에게 맡겨도 되는 것이 아닐까. 지방소멸 문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노후 안전을 위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서울에 있으니 서울로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노후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이나 지방 소도시에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노후복지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투여하여 이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어떨까. 물론 전 국민의 노후 복지에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한 만큼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관공서를 짓는데 몇천억의 예산을 낭비하고, 별 쓸모도 없는 도로를 개설하는데 몇백억, 몇천억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의외로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할 때는 단순화시켜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