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57)]반성 없는 용서
반성 없는 용서는 잘못을 정당화시킨다. 용서는 가해자,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잘못, 잘못을 직접 겪은 피해자의 존재라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피해자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용서는 대체로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용서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는 없다. 용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충분히 이해하는 등,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려는 올바른 이유가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용서는 잘못을 정당화시켜줄 우려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였지만, 이제는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은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과거 조선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원인을 우리에게서 찾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피해자인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가해자인 일본에 저들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 모습이다. 한일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협력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취지는 옳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있었던 우리의 불행한 역사의 원인에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있다. 그렇더라도 현시점에서의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적절하지 않다.
일본은 단 한 번도 저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한 적이 없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도 없다. 물론 일부 일본인들은 반성하고 사과했다. 그렇지만 다수 일본인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하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용서는 잘못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제대로 된 사과가 있을 때 있을 수 있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데 용서를 하는 것은 잘못을 정당화시켜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협력의 파트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반성과 사과를 이야기해야 하고,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일본의 잘못도 지적했어야 했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