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3)]경칩-기적이 일어나는 계절

2023-03-07     이재명 기자

어제는 개구리와 뱀, 각종 벌레 등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깜짝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경칩(驚蟄)은 원래 <한서(漢書)>에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그러다가 한(漢) 경제(景帝)의 이름인 ‘啓(계)’를 피휘(避諱)해 놀랠 ‘驚(경)’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했다. 피휘는 임금이나 높은 이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말한다. 휘(諱)는 원래 군주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경칩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기어 나온다고 생각했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 ‘제자행(弟子行)’에 “공자는 발로 그림자를 밟지 않았고, 땅속에서 나온 벌레를 죽이지 않았으며, 자라나는 초목을 꺾지 않았고…(其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라는 구절이 있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한 숟가락 흙 속에’ 전문 (정현종)

정현종의 시인의 시 ‘한 숟가락 흙 속에’는 경칩에 딱 들어맞는 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경칩은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경칩 이후에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들판에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주역> ‘계사(繫辭)’에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겨울에 칩거하는 것은 봄을 위하여 그 몸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생각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서는 것은 세상에 널리 쓰기 위함이요…” 또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연은 어질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제 할 일만 할 뿐이다.(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고 했다.

바야흐로 용(龍)이 겨울 칩거를 풀고, 만물이 제 할일을 시작하는 경칩이다.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기적을 보여주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