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쩔쩔매던 글모르는 설움 이제 그만

2023-03-14     정혜윤 기자
“여태까지 살면서 내 이름을 모르고 살았어. 근데 이제 내 이름이 읽히고, 또 내가 쓸 수도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지.”

‘중구 어르신 한글교실 강좌’ 개강식인 13일 오전 10시. 중구평생학습관에서 수강생 대표로 선서를 맡은 김순애(78)씨가 더듬더듬 선서문을 읽어나갔다. 김순애씨는 아직 10단위까지 밖에 배우지 못해 선서문에 있는 ‘2023년’이란 글자를 읽기 위해 앞서 계속 따로 읽기 연습에 매달리기도 했다.

43명의 비문해 노인이 참석한 이날 개강식은 도중에 곳곳에서 큰 트로트 음악 벨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잠깐씩 중단되기도 했다. 글을 못 읽어 휴대전화 사용도 미숙하다보니, 전화 끄는 방법을 몰라 쩔쩔맸다.

중구가 올해로 4년째 비문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문해 교육을 진행하는 이 강좌는 울산 기초지자체로는 유일하게 중구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기초 한글 및 휴대전화 사용법, 금융 관련 생활 정보 등을 학습한다.

올해 정원은 35명이지만 교육 신청이 계속 들어오면서 43명으로 올해 개강식을 열었다. 김지영 중구 평생교육계 주무관은 “비문해 어르신들의 관심과 신청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며 “중구뿐만 아니라 북구와 울주군에서도 교육 희망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 현재 전 구군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올해 수강생들의 연령은 대부분 70·80대, 최고령자는 93세이며 72세가 최연소 수강생이다. 1년 단위 교육이지만 1년으로 한글을 다 깨우치기 어려워 계속 연장 수강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올해 신규 수강생은 11명이다.

지난해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아 우수 수강생으로 선정돼 이날 선서까지 한 김순애씨는 “완전 까막눈이어서 평생 글도 모르고 죽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길 지나다니면 간판이 읽어지는게 너무 신기해서 자꾸만 혼자 간판을 읽으면서 다닌다”고 웃어보였다.

중구 어르신 한글교실 강좌는 학습 단계에 따라 5개의 반으로 나눠 수준별 수업으로 진행한다. 지난주 수강생들 대상으로 레벨테스트를 진행했고 이날부터 각 반별 정원 10명 내외로 본 수업에 들어갔다.

개강식에 참석한 김영길 중구청장은 “이번 강좌는 글을 깨우치는 것을 넘어 휴대전화 사용법까지 학습하면서 어르신들이 그간 단절된 소통·대화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혜윤기자 hy040430@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