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보낼 데가…” 갈 곳 없는 노인들

2023-03-16     정혜윤 기자
“돈도 없고, 복지관 그런덴 답답해서…. 그냥 공원에 앉아서 얘기하는게 제일 맘 편한데….”

15일 찾은 울산 중구 태화강국가정원 옆 파고라에는 낡은 의자 8여개가 아무렇게나 쌓아져있고 바둑판, 장기판이 곳곳에 놓여있다. 구 삼호교 밑과 남구 공영주차장 한 켠 자전거보관소도 마찬가지. 바람을 막기 위해 종이박스나 현수막으로 엉성하게 외부를 감싸는 건 물론 개인의자 7~10여개, 물티슈 등 개인용품도 비닐에 넣어져 여기저기 걸려있다.

중구 공원 정자에서 바둑을 두던 70대 A씨는 “집에 있으면 혼자 TV밖에 안 보고, 그렇다고 복지관은 강좌 신청해야해서 시끄럽고 피곤하다”며 “매일 공원이나 구석진데 몇명 앉아서 바둑두고 얘기하는게 제일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공영주차장, 공원, 다리 밑 등에서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고령사회 울산의 노인여가시설이 턱없이 부족, 노인들이 공원 등으로 내몰리면서 미관 저해와 함께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울산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6만3812명, 전체 인구의 14.75%로 지난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울산연구원은 오는 2027년에는 울산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울산 노인여가복지시설은 노인복지관 14곳, 경로당 843곳, 노인교실 19곳 등으로 전체 4300여명 가량이 이용 가능하지만 울산 전체 노인인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신종코로나를 거치며 경로당 등 노인시설 일부는 여전히 백신 3차 이상 접종자만 이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노인복지 프로그램도 소규모로 일주일에 1~2회 진행되다보니, 평소에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도심 곳곳으로 의자나 바둑판을 가져다두고 모여드는 것이다.

그러나 공원 등 지자체 공공시설에 장시간 구비된 의자, 바둑판 등은 미허가 시설물로 불법 적치에 해당돼 사실상 행정 처분 대상이다. 이에 공용시설 무단 점유와 함께 미관 저해 등으로 일부 민원까지 제기되면서 고령층 사이에선 사실상 마음놓고 쉴 곳이 없다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남구 주민 80대 B씨는 “공원이나 어디 구석 벤치에서 다같이 바둑이라도 두면 누가 구청에 신고하기도 한다”며 “사실상 마음놓고 시간 보낼 수 있는 곳이 없어 따로 장소를 마련해주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노인친화공원을 조성해 두고 있는 타 지자체의 사례 등을 검토해 생활형 노인복지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혜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