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사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
지난 주말, 율리에 위치한 사진 갤러리에서 진동선 사진 평론가의 특강을 들었다. 진동선 사진 평론가는 우리나라 사진계의 1세대 평론가이며 다양한 저서들을 발간했다. 오랜만의 사진 특강을 통해 일상에 묻혀 미뤄두었던 사진 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보통의 예술 매체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직접 작품이 탄생하지만 사진은 카메라와 피사체라는 매개를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갖는다. 내 몸이 아닌 남의 몸을 빌려서 작가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활용될 때는 그 어떤 매체보다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도시 풍경의 사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진이 신문이나 뉴스의 보도사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현대 도시 상황에 대한 기사를 뒷받침하는 사실 전달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사진이 한 작가의 쓸쓸한 심경을 표현하는 의도된 이미지라면 같은 사진이지만 그 의미와 해석은 달라진다. 사진작가는 말이나 글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돌려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감상자는 그것을 알아차려야만 그 사진의 속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진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어쩌면 감상자들은 번듯한 피사체를 예쁘게 잘 찍은 사진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잘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찍은 사진은 사진술만 익히면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좋은 사진은 작가의 이야기가 느껴지는 사진이어야 한다. 두고 보아도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작은 요소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진,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사진들이 좋은 사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 알아보기 어렵고 고차원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만이 좋은 사진이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편안하고 보기 좋은 사진이 나를 위로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보여지는 이미지에 함몰되는 것은 사진가로도 감상자로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좋은 사진’은 나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로, 나의 생각을 대신하는 피사체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다. 사진의 거장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이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사진가에게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사진 예술은 정통 미술이나 음악처럼 향유하는 문화의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깊이가 얕은 것이 아니기에 사진가도 감상자도 많은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대신 일상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예술의 분야라는 강점도 있다.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아도 좋으니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세상’을 사진으로 남겨보기 바란다. 그것이 내 삶의 역사로 남고,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