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인공지능의 홍수 속에서도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가치

2023-03-28     이재명 기자
오픈 AI가 지난 14일 GPT-4.0을 공개했다. 기존 GPT-3.5보다 데이터처리 능력이 8배 이상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변호사 시험 ‘UBE(Uniform Bar Exam, 400점 만점)’에서 기존 챗GPT보다 85점 높은 293점을, 대학수학능력시험 ‘SAT’ 수학 과목(800점 만점) 시험에서 기존 챗GPT보다 120점 높은 710점을 기록했으며 텍스트 외에도 이미지를 입력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인간 변호사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기본적 자질이 입증되었다는 의미이다. GPT. 이름조차 생소한 GPT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기존 챗GPT가 출시 5일 만에 하루 활성이용자 100만명을 돌파했고, 세 달 만에 월(月) 활성이용자(MAU) 1억명을 넘어섰다는데 새로운 4.0버전의 파급력은 얼마나 더 폭발적일까. MAU 1억명 도달까지 인스타그램은 2년 반, 틱톡은 9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GPT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세상의 반응도 뜨거운 것 같다.

개념도 낯설고 명칭도 낯선 GPT의 등장에 SF영화 속에서나 보던 인공지능의 시대가 더 한층 가까워졌음이 느껴진다.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의 등장에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더 효율적인 세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환호도 있지만, 다른 한 편 두려움도 든다. 특히 GPT는 기존에 오직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자료분석, 보고서 작성, 기사 작성, 작곡 등 이른바 전문적 영역에서 인간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인간이 기계보다 못한 시대가 성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GPT의 탁월한 자료 분석 및 보고서 작성 능력을 보면서 당장 변호사의 영역이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변리사, 행정사 등 기존 법률전문직군 업무의 상당부분이 자료분석, 서류작성, 서류제출 등인데, GPT가 법률전문분야에 활성화되어 적용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법률전문직군 종사자의 인위적 도움없이 GPT에 질문하고 자료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전문가 이상의 자료분석과 법률서면을 얻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률사무 중 자료분석과 법률서면작성 부분은 상당부분은 형식화되어 있어 지금도 어느 정도 체계화만 이루어지면 유사 사건은 유사하게 진행할 수 있는데, 인간보다 수만배 더 빠른 속도로 더 방대한 자료를 검색해 이를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GPT의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성과물을 얻기 위한 비용과 효율성 그리고 결과물의 수준에서 인간이 도저히 GPT 등 인공지능을 따라갈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성큼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물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많은 질문과 고민을 해야만 한다. 변호사 업무에 국한해 고민해 보건데, GPT 등 인공지능이 본격 법률사무영역에 도입되기 시작한다면, 기존에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받던 자료분석과 서면작성 능력보다 타 분야 전문가 및 관련자들과 네트워킹을 이루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데이터에 없는 새로운 창의적 기획과 소통을 하는 것이 변호사의 더 중요한 역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 변호사에게 필요한 중요역량의 기준이 바뀌게 되면 교육방법과 자질의 평가 기준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과거 법학공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과 판례를 암기하고 이를 천편일률적으로 현출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암기와 현출기능이 우수한 자가 우수한 법조인 자질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GPT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이 법학에 도입된 미래에는 이런 암기와 현출능력은 GPT 등 인공지능에 가려져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자질 기준과 새로운 교육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공지능의 홍수 속에서도 반드시 인간이 사수해야만 하는 가치도 존재한다. 법률사무 중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가치판단과 가치제시의 영역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인공지능에게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고,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일 수있게 하는 가장 본질적 영역이 가치판단과 가치제시이기 때문이다. 이 기능을 인간이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기계와 주인의 역할이 바뀌게 된다. 법률분야 뿐 아니라 모든 분야마다 이런 반드시 사수해야 할 최소한의 가장 존귀한 가치영역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의 기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지켜지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