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6)]벚꽃 그늘 아래서
코로나19가 끝나가서 그런지 벚꽃 명소마다 인산인해다. 경상일보 앞 무거천변은 그야말로 벚꽃 세상이다. 하천의 모습이 弓(궁) 자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겨 궁거랑이라고도 불리는 무거천은 오수만 흐르던 하천이었는데 남구청의 노력으로 대변신을 했다. 이처럼 울산의 모습은 나날이 꽃동네로 변해가고 있다. 꽃이 많이 피는 곳에 사는 사람은 아무래도 정서가 곱다.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 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 놓고/ 구름처럼 하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일부(이기철)
울산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 명소는 누가 뭐래도 작천정 벚꽃터널이다. 1㎞ 남짓한 이 길 양쪽에는 234그루의 왕벚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벚꽃이 만개하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다. 작천정 벚꽃터널의 벚나무는 일제강점기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틈틈이 심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60대 말에 고(故) 윤동명씨(작천정보존회)가 육필로 기록한 자료를 살펴보면 벚꽃터널의 내력을 훤히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벚꽃터널 길은 1937년 곽해진 삼남면장 등 몇몇 인사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당시 이 길은 작천정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진입로였다. 길가의 벚나무는 당시 울산군 교육위원 선거에 입후보한 하봉철씨가 희사한 것이다. 1937년 봄에 3~5년생 벚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지금은 90살을 넘은 셈이다.
벚꽃이 흩날린다 서러워 마라/ 꽃의 시대를 땅에 묻고/ 흐드러진 열매 맺는 시대 키워/ 모두가 함께 따는 날을 꿈 꾼다/ 흩날리는 벚꽃은 눈물이 아니다/ 희망의 앞날을 기약하는 축복일 뿐이니… ‘벚꽃이 흩날린다고 서러워마라’ 일부(최범영)
벚꽃은 피는데 5일, 지는데 5일 정도 걸린다. 중간에 비·바람까지 닥치면 순식간에 진다. 옛날부터 문인들은 비처럼 내리는 꽃잎을 화우(花雨)라고 했다. 그러나 서러워 하지 말라. 시인의 말처럼 흩날리는 벚꽃은 눈물이 아니라 열매를 기약하는 축복일지니.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