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39)]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흔히 성격이 팔자라고 한다. 자신의 운명은 자기 탓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적절히 제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하는 것 같다. 세월의 풍상을 겪어오면서 얻은 지혜가 또 하나 있다. 운명은 자신의 성격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혈연관계 속에서 사랑이나 배려 같은 정서보다 원망과 회한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얻게 된 경우에는 평생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루어가는 과정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한부분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이 타인이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하는 욕망이 너무 확고해서 다른 가치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도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는 유명 개그맨은 친형을 상대로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아무 의심 없이 수십 년 동안 믿고 재산 관리를 맡긴 것이 사단이 발생한 까닭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50살이 넘어서까지 홀로 살고 있는 동생을 위해 형은 여러 개의 생명보험을 들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동생도 모르는 보험이다. 그 형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생을 위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형제 관계도 상황에 따라서는 참으로 무서운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부모 자식 간의 윤리나 형제간의 의리가 재산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윤리 경영으로 칭송받는 국내 굴지의 전자그룹도 경영주 가족 사이의 재산 분쟁으로 소란스럽다. 새로운 경영주의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상속 재산을 다시 분배하자고 소송을 시작했다. 그들이 아들과 오빠를 상대로 재분할을 요구하는 재산 규모가 2조원대라고 한다. 이들을 보노라면 흔히 천륜이라고 말하는 인연도 하늘이 내려 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욕망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하는 인간 사이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관계는 더 복잡하고 가늠하기 힘들다. 타인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는 사람을 사회관계 속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천성이 여리거나 세상살이에 지친 힘든 사람들 곁에는 이들을 지배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 같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어려움을 위무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지도자의 이름을 영어 이니셜로 앞세우는 종교집단이 주장하는 교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천지를 만들겠다고 외치는 이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건전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신비적 언어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짐작할 수는 있다. 세상이 힘들고 복잡할수록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 간명한 논리가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인간의 신앙심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번성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의 복잡한 논리를 간명한 언어로 해석하고 설명하기는 쉽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말처럼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세상의 어려움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삶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어두운 인연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를 기르고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인간관계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은 더 중요한 일이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어둔해 지는 노인이 되면서 자주 되새기는 생각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