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비타민워터 집단소송이 일깨워준 것들

2023-04-11     경상일보

비타민워터는 J. 다리우스 비코프라는 미국인 기업가가 설립한 글라소라는 회사에서 2000년 처음 미국 시장에 판매를 시작한 음료 상품이다. 정제수에 수용성 비타민과 색소, 그리고 32g의 설탕을 첨가해 만든 이 상품은 미국 내에서 ‘비타민+워터=당신 손 안에 있는 그것’ ‘비타민+워터=당신에게 필요한 전부’ ‘아연과 강화 비타민의 조합은 당신을 말(馬)처럼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수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들을 붙여 판매했고, 안(眼) 질환 위험을 낮추고, 관절 건강을 증진하며, 긴장을 풀어주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가져다준다고 홍보했다.

상표 속 단어들이 갖는 건강한 이미지와 빨강, 노랑 등 선명한 색상들로 맛을 구분한 이 무탄산음료는 단숨에 건강음료 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되었고, 제조사인 글라소는 2007년 5월 코카콜라에 42억달러에 인수되었으며, 비타민워터 역시 새로운 맛을 시장에 시즌마다 선보이며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상품 성분을 포함한 위 음료의 설명과, 뒤 이은 홍보 문구들을 순서대로 읽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소비자들도 14년 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09년 워싱턴 D.C.의 비영리 소비자단체인 공익과학센터(Center for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와 리스(Reese LLP), 스콧 앤 스콧(Scott & Scott LLP) 두 로펌들은 2009년 코카콜라와 자회사 글라소를 상대로 비타민워터를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한다는 식으로 건강과 연관지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법원에 청구하는 취지의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이후로 7년간 계속되었고, 2015년 9월 당사자 간 소송을 종결하는 합의서가 체결되었으며, 이듬해 4월 뉴욕동부연방지방법원(E.D.N.Y.)의 로버트 르비 판사가 합의서상 합의 내용을 승인함으로써 종결되었다. 미국에서의 집단소송은 기업 측이 통상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고객 측에 지급하는 것을 합의 조건에 포함하는데, 이 소송은 청구 취지가 배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 코카콜라 측은 273만달러의 소송비용만 지불하고 상품의 표시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무 사항을 준수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질병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한 것이기에 이를 자극하는 상술은 언제나 성공 가능성이 높다. 확인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야기하는 식품의 효능에 대한 과장과 의약품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염려해 아무리 촘촘히 안전성에 대한 규제를 세워놓아도, 시장의 누군가는 기어이 이를 회피한 상업적 시도를 하고,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 비슷한 시도가 줄을 잇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1989년 겨울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었던 공업용 우지(牛脂) 파동과 2010년 말 카제인나트륨 비방광고 사건, 그리고 2019년 가을 있었던 개 구충제 펜벤다졸의 항암 작용에 대한 소문과 이를 받아들였던 대중의 반응은 이런 종류의 사건·사고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지난 3월24일, 네이버는 ‘헬시차트’라고 하는 홈페이지를 공개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건강기능식품을 맞춤 추천하는 웹사이트라고 한다. 인터넷 배너 광고에는 ‘딱 맞는 비타민 추천해 드릴까요?’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이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는 의사나 약사가 제공하는 진단과 조제, 처방과는 전혀 무관한 인터넷 쇼핑용 상품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들은 네이버라는 매체와 빅데이터, 인공지능, 알고리즘, 맞춤과 같은 말에 현혹되어 일반적인 상품 거래에 필요한 신뢰 이상의 의·약학적 전문성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지난달 경상시론을 통해 적은 것처럼, 규제라는 말에 부정적 선입견을 덧씌운 뒤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의도를 경계하길 바라고, 우리 주변의 문화적·상업적 메시지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만 머물지 말고, 그것들에 마땅한 의문을 제기하길 권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