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배움을 얻어 빛으로 자라나는 곳, ‘날빛자리’
코끝에서 느껴졌던 시원한 바람이 반가웠던 기억으로 보면, 늦봄쯤이었을까. 널어놓은 빨래가 밤바람에 조용히 찰랑거리고 TV에서 9시 뉴스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얼른 숙제를 마치고 까슬한 이불을 펴고 잘 준비를 했다. 눈을 감고 누워 나를 감싸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고요한 밤의 평화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행복을 몽글몽글 느꼈다. 그 옛날 초등학생 시절의 행복함이 어느 순간에 문득 피어오르면, 나의 감정이 어우러진 그 공간은 다시 선명해진다.
가끔은 일상의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이 안 될 때, 아담한 나만의 공간을 정리한다. 대단할 것 없는 작은 책상 하나를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면, 흐트러진 내 마음이 쓱싹쓱싹 닦여나가는 듯 상쾌해진다. 공간과 마음이 한 결로 와닿는 소소한 일상에서, 공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깊이 느껴본다. 이렇게 작은 공간도 큰 의미를 주는데, 우리 학생들이 꿈을 키워가는 ‘학교’라는 공간은 더 말해 무엇할까.
작년 한 해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에 참가해 학교 선생님과 교육청 관계자 그리고 지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정독실 공간혁신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정독실이 아닌, 학생들의 행복한 추억과 즐거운 집중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애를 썼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롯이 보내며, 참여하신 분들 모두가 함께 논의하고 견학하며 설계도를 그려보고 상상했다. 그렇게 길고 힘들었던 과정을 함께 달려, 마침내 ‘날빛자리’라는 세상 가장 밝은 곳을 탄생시킨 것이다.
‘배움을 얻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으로 자라나는 곳, 날빛자리’라는 이 심쿵한 이름도 학생의 마음에서 떠올린 이름이다. 순식간에 대송고 ‘핫플’이 되어버린 이 공간의 문을 열면, 이 소중한 공간 창조에 힘을 모았던 학생들의 밝은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어렵고 마음이 쓰이는 업무를 담당해주셨던 선생님들과 학교, 교육청 관계자들의 노고와 정성을 둘째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서이다.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다 같이 힘을 모아 해낸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의 멋진 결과를 보며 학생들은 누구보다 두둑한 자신감과, 모두가 함께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는 공동체 의식까지 느꼈다는 멋진 소감을 들려주었다.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라는 이름과 딱 맞게, 환하고 밝은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선생님과 친구와 진지한 삶의 대화도 나누고, 너른 평상에서 넉넉한 휴식을 즐기며, 깨끗한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전교 회장과 부회장의 바람이 실현된 듯하다. 학생들의 마음에 소중히 간직될 고등학교 생활의 추억 한 조각은 멋진 어른이 되어있는 그들의 마음에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또다시 환한 빛을 가득 채워줄 것 같다.
김건희 울산 대송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