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00)]송화(松花)가 피는 계절

2023-04-25     이재명 기자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시 ‘윤사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요즘 송홧가루와 황사가 뒤섞이면서 울산 전체의 시야가 종일 희뿌옇다. 시(詩) 속의 산지기 외딴 집에도 송홧가루가 노랗게 내려 앉았으렸다.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이 시의 주인공은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 어쩐지 영화 ‘서편제’(1993년 개봉)의 주인공 송화(松花 오정해 분)와 오버랩된다.

“사람의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한이 사무쳐야 되는데 니 소리는 이쁘기만 하지 한이 없어. 사람의 한이라는 것은 한 평생 살아가며 응어리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여~”

아버지 유봉은 결국 양 딸 송화(松花)의 눈을 멀게 해버렸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 송화는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었다.

황사 바람 가시고 송화가 피면/ 온다던 누이는 영영 오지 않는데/ 해 종일 산접동/ 접동새 울음을 안고/ 산자락 자락마다 송화가 핀다.// 흰 죽사발에/ 맑은 낮달을 눈물로 헹구다/ 송화 따러 간 누이는/ 돌아오지 않는데/ 청솔바람 가득 안고 송화가 핀다.// 해마다 보릿고개 힘이 겨워서/ 송기 벗겨 눈물로 채우던 설움/ 설움덩이가 옹이로 불거져도/ 송화를 잘도 피워내는 조선 소나무/ 이 고장 마음색 피고/ 누이의 살결같은 송화가 핀다. ‘송화(松花) 필 무렵’ 전문 (임홍재)



한의학에서는 송화가 기를 보(補)하고 풍사(風邪)를 몰아내며 심폐를 윤택하게 하고 주독(酒毒)을 풀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고, 심폐를 윤(潤)하게 하고 기(氣)를 늘린다. 풍(風)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고 기록돼 있다. 궁중의 연회에 나온 음식 중 송화로 만든 음식으로는 송화다식이 유일한데, 거의 모든 궁중연회의 고임상에 올려졌다.

바야흐로 봄이 4월을 통과하고 있다. 골짝마다 접동새 우는 소리 아득하고 해 긴 오후 송홧가루는 분분하다. 그리움이 송홧가루처럼 날리는 봄날 오후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