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 오영수 ‘사신 기록물’ 사후 44년만에 첫 공개]문인들과의 교유·난에 대한 지극한 사랑 엿볼 수 있어
난계 오영수 선생의 사신으로 당시 문단 지형도와 선생의 문학 세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종석 문학평론가가 공개한 오영수(1909~1979) 선생이 조연현(1920~1981) 선생에게 보낸 사신 11통 중 19장 가운데 유일하게 전주에서 보낸 1통 2장만이 짧은 내용을 담은 엽서로 작성됐다. 앞면에 수·발신인, 뒷면에 짧은 내용이 담겨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문단 지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수록됐다. 앞면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孝悌洞(효제동) 現代文學社(현대문학사) 趙演鉉 兄(조연현 형)과 全州(전주)서 吳永壽(오영수)’ 등 기존 엽서와 동일하다. 뒷면은 ‘별일 없읍니까? 豫定(예정)대로 進行(진행)되고 있읍니다. 新聞(신문)을 通(통)해 ○○○○ 알고 ○○○으로 생각합니다. …丘用 氏 大田(구용씨 대전)서 만났읍니다. 그 이야기는 여기에 다 할 수 없읍니다’가 적혀있다. 엽서에 적힌 짧은 문구이지만, 현대문학사로 보낸 내용에서 전주에서 열린 전국 단위 문학 강연회에 참석했고, 시인 김구용도 만났다는 것도 포함했다. 이를 통해 당시 전국 문인들의 행사 규모와 왕성한 활동을 펼친 문인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서울 우이동에서 보낸 사신에서는 문학 정신과 문학사를 엿볼 수도 있다. ‘잘 길러 보소. 순 두 개가 완전히 자라거던 묵은 잎은 잘라버리소. 음지에서는 사흘에 한 번 물을 주면 됩니다. 꽃이 피면 香(향)이 굉장히 좋읍니다. 허술히 하지 마십소. 총총’이라고 적혔다. 이 사신에서는 오영수 선생이 난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신이 아니라면 ‘난’이라는 제목의 서정시처럼 느껴진다.
박 문학평론가는 “오영수 선생은 소설가로 문학적 조망을 받기 전에 이미 동시나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이런 창작 태도가 사신 기록물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난의 생장 과정을 그리는 글에서 꽃이 피고 향이 나는 세상을 꿈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특히 해방 이후 문학 비평과 한국 현대문학사를 조망하는 문인으로 평가받는 조연현·백철 선생과의 교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신도 있다. 오영수 선생은 울산으로 낙향한 후 조연현 선생에게 ‘서울 떠난지 오늘이 五日(오일)짼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난 것 같읍니다. … 동생(양근?)이 편지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제수가 순산(生男)을 했읍니다. 豫定(예정)보담 四十日(사십일) 가량 早産(조산)이라고해서 念慮(염려)스러웠으나 産婆(산파) 말에 依(의)하면 아이도 健康(건강)하고 産母(산모)도 健康(건강) 이상없고’라고 적혔다.
박 문학평론가는 “서울에서 울산 울주군으로 낙향한 후 5일 만에 동생의 득남 소식까지 알릴 정도면 두 작가의 인간적 유대감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알 수 있다”며 “작가 사신은 당시의 창작 기법과 태도는 물론 작가의 심리까지 비춰 볼 수 있어 전기나 평전 연구에 고증 자료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