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위직 공무원의 역할
울산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공기관은 울산학생교육원이다. 고도 680m. 출퇴근 때마다 한 번씩 귀가 먹먹한 경험을 하는 우리는 울산 최고의 고위직 공무원들이다. 우리보다 더 높은 고위직 공무원은 아마 산불감시원밖에 없을 것이다. 물 맑고 공기 좋고 통근버스도 운행하니 근무하기는 참 좋은데 단점이 하나 있다.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엊그제는 20℃가 넘어 땀깨나 흘렸는데 오늘은 다시 파카를 꺼내 입고 학생들을 맞이한다. 점심 무렵 느닷없이 비가 쏟아져 급하게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는데 웬걸 바로 해가 보인다. 어느 해인가 4월의 폭설로 오도가도 못한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숙박을 하루 연장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아침 일찍 학생들을 태운 버스들이 구비구비 우렁차게 산을 올라온다. 경사가 심하기로 악명높은 울산의 길을 꼽으라면 북구 마우나리조트 가는 길과 강동으로 넘어가는 무룡산 옛길을 들곤 하지만, 석남사에서 배내재를 넘는 이 길이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올라갈수록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머리까지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 무렵 짧은 터널을 하나 만난다. 나는 대한민국의 터널 중 이렇게 경사가 급한 터널을 본 적이 없다. 굉음을 토해내는 엔진에 맞춰 덩달아 팔다리에 힘을 주다 보면 드디어 우리 교육원에 도착한다.
우리 교육원은 삶을 가꾸고 미래를 열어가는 네 가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첫째는 고등학교 1학년 대상 행복어울림과정이다. 이는 국궁·클라이밍 등 심신을 수련하고, 뮤지컬·드론 등 진로를 탐색하고, 교육연극·평화여행 등 타인에 대한 존중, 학교자치,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케 한다. 두 번째는 초등학생 꿈자람캠프다. 문학,미술 등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하고 협력 컵 쌓기 등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세 번째는 사제동행 영남알프스 탐방으로 함께 산에 올라 팀 미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사제간의 정서적 공감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네 번째는 주말 학교 자율캠프다. 학급, 동아리 등의 신청을 받아 1박 또는 무박 자율과정을 연중 지원한다.
저마다 가방을 둘러매고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또 갓 리모델링을 마쳐 깔끔한 건물 앞에 서서 이들을 맞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표정에서도 자상함과 자부심이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교육장으로 모이는 동안 학생들은 쉴새 없이 웃으며 떠든다. 그래 너희들 지난 삼 년간 야외활동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겠구나. 친구들 얼굴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겠구나. 학생교육원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연간 교육일정은 3월부터 촘촘히 진행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어있는 날짜도 다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캠프 신청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 물적 인적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력이 좀 더 있다면 학교의 신청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중학생 대상, 다문화학생 대상, 저소득층 대상 과정들을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 생활 중 학생들이 가장 많이 환호하는 시간은 우정의 무대 시간이다. 노래와 춤을 뽐내는 학생들과 나도 매번 자리를 같이 하지만 끝까지 함께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음향과 함성이 워낙에 크다 보니 조만간 귀마개를 하나 꼭 장만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중간에 일어서곤 한다.
우리 교육원은 수련 활동을 통하여 심신을 수련하고 민주시민 의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요원, 행정직원, 삼시 세끼를 담당하는 분, 시설을 정비하는 분, 청소를 하시는 분 등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노고가 모여 교육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더욱 서로를 배려하는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조성철 울산학생교육원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