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04)]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날리고

2023-05-23     이재명 기자

강가에 수양버들이 늘어지기 시작하는 5월이다. 고교시절 죽어라 외웠던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다시금 되뇌이게 되는 계절이다.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는 초록빛이 짙은데)/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임을 보내는 남쪽 포구에 슬픈 노래가 퍼지네)/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다 없어질까)/ 별루년년첨녹파(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거늘)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은 예로부터 중국으로 사신들이 왕래하는 주요 통로였다. 그렇다보니 대동강 강가에서 이별하는 남녀들도 많았다. 김동인의 <배따라기>도 사실은 사신들이 타고 떠나는 배를 노래한 ‘선리가(船離歌)’였다. 이 때 남녀는 버들가지를 꺾어 주면서 석별의 정을 달랬다. 버드나무 류(柳) 자는 발음이 ‘류’로, 머문다는 뜻의 ‘유(留)’ 자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대동강 나루터에서 버드나무를 꺾어주면서 이별을 만류했다. 조선의 풍류 시인 임제는 ‘패강가(浿江歌)’라는 시를 남겼다.


‘이별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꺾는 버들(離人日日折楊柳)/ 천 가지 다 꺾어도 가는 님 못 잡겠네(折盡千枝人莫留)/ 어여쁜 아가씨들의 많은 눈물 탓인 듯(紅袖翠娥多少淚)/ 해 질 무렵 부연 물결도 시름에 잠겨 있네(煙波落日古今愁)’

버드나무는 수천년 전부터 치료제로 사용됐다. 제약사 유한양행의 로고가 버드나무라는 사실은 이 나무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말해준다. 양류관음도와 수월관음도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 꽂아 두고 있다. 중생들의 고통을 치료해주기 위해서다.

버드나무는 그 종류만 350여 종에 이른다. 수양버들, 능수버들, 왕버들, 꽃버들, 좀꽃버들 등. 그 중에서도 능수버들, 수양버들은 가느다란 가지가 길게 늘어져 그냥 버들이라고 부른다. 태화강 강가에는 많은 버들이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있는 왕버들 두 그루는 이전에 느티나무로 잘못 알려졌다가 왕버들로 수정되기도 했다. 김소월의 시 ‘실버들’이 바람에 날리는 계절이다.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 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때엔/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