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회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23-06-08     경상일보

필자는 12년째 블로그를 운영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결혼과 출산, 여행 등 인생의 이벤트를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블로그에 털어놓기 시작했고,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이 정리되면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며칠 전, ‘2년 전 오늘’이라면서 필자가 2년 전 남긴 블로그 글에 대한 알람이 울렸다.

“회피하지 말자.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내 잘못임을 인정하고, 사태를 수습하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너무 의기소침하지도 말자. 잘못한 일의 무게를 무겁게, 대신 기꺼이 받아들이자.”

최선을 다한다고 한 일에 실수가 있어 힘들어하던 시기에 적은 글이라, 글을 읽으니 작성할 당시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실수가 있었는데, 그 실수를 깨달은 후 어떻게 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쓴 글이었다. 저 글을 쓴 다음 비로소 내 실수를 정면으로 마주했고, 온전히 책임지기로 결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형사사건으로 필자를 찾아오는 의뢰인 중에는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린 경우도 있는 반면, 실제 잘못을 저질러 그 결과가 두려운 마음에 필자를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자의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가장 많이 토로하는 감정이 ‘억울함’이라면, 후자의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가장 많이 토로하는 감정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필자는 평소 의뢰인들이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적지 않은 보수에는 의뢰인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업무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의뢰인들이 가진 두려움을 공감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엄한 처벌을 받아 인생을 망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의뢰인에게 마냥 희망적인 결과를 장담하거나 잘못을 회피할 방도를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하되 잘못하지 않은 부분까지 책임을 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의뢰인이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회피하려고만 하면 어쩔 수 없이 내내 전전긍긍하게 된다. 경제나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리스크를 감추려고만 하면, 그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고 계속 남아있게 되고, 결국은 그 리스크를 감추려한 행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영국의 조세전문가인 조시아 스탬프(Josiah Charles Stamp)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쉽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피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다. 결국 피할 수 없다면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지연 법무법인PK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