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각석’과 ‘암각화’

2023-06-16     경상일보

모든 이름이 그렇듯이 문화재 명칭도 해당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를 알 수 있는 핵심적 내용이 담겨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보인 ‘울주 천전리 각석(이하, ‘천전리 각석’)’은 명칭 변경을 검토해볼 시기가 되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이 문화재가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될 당시는 선사인이 남긴 ‘암각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가운데 ‘명문’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둘째, 너비 9.5m, 높이 2.7m 크기의 ‘천전리 각석’ 바위 면에 새겨진 ‘가득한 조각’ 중에는 ‘명문’ 이외에 수많은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기마행렬도, 용, 배와 같이 ‘명문’에 뒤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그림’이 더 넓은 바위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바위 면에 새긴다’는 의미의 ‘각석’보다는 ‘암각화’라는 명칭이 이 문화재를 더 알기 쉽게 해준다. 셋째, 대곡천 계곡에는 ‘천전리각석’ 이외에도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 암각화’)’가 있고, 최근에는 ‘울주 반구천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드디어는 오랜 노력 끝에 이들 문화재의 세계유산 지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처럼 같은 대곡천 계곡에 있으면서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문화재를 아우르면서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이름을 찾을 필요가 생겼다.

‘천전리 각석’은 1973년 5월4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지금부터 만 50년 전이다. 이보다 3년 앞선 1970년 12월24일에 문명대 교수를 책임자로 한 동국대학교 박물관 불적조사단이 이 유적을 처음 발견했고, 1973년의 약식보고와 1984년의 종합 보고를 통해 그 전모가 알려졌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찾은 ‘천전리 각석’에 대한 <문화재 설명>은 “태화강 줄기인 대곡천 중류의 기슭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새겨진 암석으로, 아래·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있다. 또 ‘천전리각석’에는 그림 이외에 신라 법흥왕대에 왕과 왕비가 이곳을 다녀간 내용이 한자로 새겨져 있는 등 그 조각 내용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라는 내용으로 문화재 설명은 마무리되어 있다.

한편, <울산광역시사>(역사편)를 보면, “이 유적이 발견된 1970년대 초까지는 암각화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어서 제작기법 분류 및 표현내용 정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대신 명문의 경우는 신라 왕실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학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으로 눈길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은 유적에 대한 약식 보고와 국보 지정이 같은 해에 이루어진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명문을 제외한 암각화에 대한 연구가 초보적인 수준에서 국보 지정이 이루어진 것은 명문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관점은 ‘반구대 암각화’에도 적용된다. 즉, 같은 국보지만 훨씬 늦게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가 지금은 ‘천전리 각석’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천전리 각석’보다 1년 늦은 1971년 12월24일에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 되었는데, 국보 지정은 ‘천전리 각석’보다 무려 22년이나 늦은 1995년에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만 해도 문자가 아닌 바위그림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정리하면, 대곡천 계곡의 세계유산 지정 대상 문화재에 공통되는 단어는 ‘울주’와 ‘반구’인데, ‘울주’와 ‘대곡’ ‘천전’ 등은 행정구역 명칭이다. 따라서 문화재의 내용, 즉 본질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암각화’와 ‘각석’이 남는데, ‘각석’보다 문화재의 본질을 더 잘 알 수 있고, 또 널리 알려진 ‘암각화’라는 명칭을 ‘천전리 각석’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해 본다. 그렇게 되면 ‘울주 천전리 각석’이 ‘울주 천전리 암각화’로 된다. 사족이지만,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모두 영어로는 ‘Petroglyph’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