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제조업 생존을 위한 전제 조건들

2023-06-29     경상일보

미·중 패권 다툼이 심화되며 중국에 진출한 많은 한국기업들이 철수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새로운 산업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이 중요한 부의 원천일 수 밖에 없는 국가이다. 당연히 경쟁력 갖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늘 해외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는 한국 기업들의 숙명이 참 고달프게 다가온다. 반면, 이러한 절박함이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세계 상황에 잘 적응하는 강한 경쟁력을 갖게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중국 진출이 유행처럼 번지던 90년대 중반 중국에 진출했다가 얼마 전 30년 가까운 타향살이를 보람없이 마무리짓고 빈손으로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온 한 중소기업 사장의 어려움을 도와드렸던 적이 있다. 처음 진출하게 된 계기와 진출해 환영받고 회사를 급성장시키던 이야기, 중국 내 협력사와 직원들의 배신과 이어진 중국 정부의 탄압,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는 상황에서 흑자상태인 회사를 거의 빼앗기듯 내버려두고 야밤도주해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아픔,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에 투자했고 키워온 자산을 활용할 수 없어 어려움이 반복되는 상황까지, 긴 시간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많은 고민이 들었다. 사장 한 사람의 경영실패 또는 판단착오로 가볍게 생각하기에는 개인이 혼자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리스크’였고, 많은 중소기업이 숙명처럼 맞게 되는 불공정이었다.

법률이 존재하는 것은 법률이 없는 세상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법률이 없는 세상이란, 돈과 권력을 가진 강자가 마음대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불공정함의 세상이다. 반대로 법률이 제대로 기능하는 세상은 강자라고 하여 강자의 마음대로 예측불가능한 불공정함을 실행시킬 수 없고, 법률의 기준이 공정하게 적용되며 그 기준이 실제 실행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베트남 등 법률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법률이 없는 세상’에서 생존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언어와 문화가 낯설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곳은 그 자체로 서럽고 어려운 타향살이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법률을 해석할 수 없고, 법률이 있다하더라도 불공정하게 적용되며, 어렵게 법에 기대는 상황이 되더라도 법률에 의한 실질적 구제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어렵게 타국에서 살아남아 자리잡은 잘 나가는 한국기업은 그저 그 타국 권력자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국가와 개인 그리고 기업 모두에게 짧게 이익되지만 길게 손해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외국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요인들을 찾아서 해결해주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기업이 있다면 해외의 노동력을 들여와서라도 한국에서 기업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제한적으로 해외 근로자 고용이 가능하지만 보다 적극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노동력을 구하지 못해 해외로 나가고 해외에서 불공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게 하는 것보다 해외 노동력을 한국에 들여와 기업활동을 영위하게 해준다면 기업도 좋고 국가도 좋고 부수적 파급이익도 있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고 여러 이유로 당장은 실현 가능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노동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기에 제조업 경쟁력을 더 잃기 전에 지금이라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크고 작은 실험을 해봐야 한다. 안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를 찾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얻게 되는 집단과는 더 많이 설득하고 조율해야 한다.

제조업 생존을 위한 다양한 구조적 실험이 산업수도 울산에서 있었으면 한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