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심수향 ‘물끄러미’
눈물 마른 맨살에 닿는
웅숭깊은 저 눈길을
물끄러미라 하자
구름 한 조각만 머리 위에 날아도
외로움이 덜어질 것 같은 날
언덕 위 노송 서너 그루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이만치 오다 뒤돌아보면
박수소리 보내주는 나무
유년 시절
목 고개 들고 올려다보면
싱긋 웃어 주던 용석 아재같이
은근과 쓸쓸히 고인 저 눈빛
내 지금 가는 곳은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세상
한 걸음 내딛고
물끄러미 뒷배 삼아
한 걸음 또 한 걸음
낯선 세상에 힘이 되어 줄 고요한 격려와 응원
초등학교 때 우리는 마을 신작로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버드나무는 잘 자라서 멋진 가로수가 되었고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푸른 손을 흔들며 환영이나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외로운 타지에서도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생각하면 기운이 났다.
우리 마을의 버드나무처럼 시인은 ‘언덕 위의 노송 서너 그루’를 마음에 둔 모양이다. 시인은 물끄러미 마을을 내려다보는 그 나무를 보고 ‘눈물 마른 맨살에 닿는/웅숭깊은 저 눈길’이라고, ‘물끄러미’란 말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물끄러미’란 말없이 맞아주고, 품어주고, 다독여주는 눈길이다. 구름 한 조각에도 외로움이 덜어질 것 같은 막막한 날, 저 묵묵한 나무가 주는 위로는 얼마나 큰가. 마치 어린 시절 ‘용석 아재’, 아마 넓고 푸근한 등으로 시인을 업어주고 팽이나 연 같은 걸 솜씨 있게 만들어주었거나, 울고 있는 시인에게 곶감 등을 주며 달랬을 상머슴이나 오촌 아저씨 같은, 그런 나무.
‘물끄러미’란 말에는 한없는 고요와 신뢰와 너그러움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격려와 응원의 그 ‘뒷배’에 힘입어 두려움을 이기고 낯선 세상으로 한 발 또 한 발 내디딜 수 있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