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과학과 진실
과학(科學, Science)은 사전적으로 ‘사물의 현상에 관한 보편적 원리 및 법칙을 알아내고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 체계나 학문’으로 정의한다. 또한 케임브리지 사전에서는 ‘Science’를 ‘관찰, 측정 및 실험을 통한 물리적 세계의 구조와 운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이런 연구의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의 개발 (또는 그로부터 얻은 지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뜻 읽어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좀 더 풀어쓰면 과학의 대상은 ‘사물’ 또는 자연과 같은 ‘물리적 세계’를 ‘보편적 원리 및 법칙’으로 규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그것을 ‘관찰하고, 측정하여, 실험(이론)으로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과학적 정의로부터 일반적인 사람들과 과학자들은 사물이나 현상의 설명에는 분명 어떤 생각의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종종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단계들을 밟아 간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과학적인 설명은 다른 종류의 설명들과 어떻게 다른가?” “과학은 거의 모든 것들을 다 설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과학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가 과학적 이해의 수준을 측정하는 데 핵심이 된다. 철학자들은 지식의 본성, 특히 과학적 지식의 본성에 관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였다. 과학의 발전은 이 질문들에 대한 인간들의 사고를 자극해왔고 아직도 많은 논제들이 더욱 세밀히 구분되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 그리고 이들을 통한 가설과 이론의 검증이라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 과학적 방법은 생각이나 현상들을 검증하고 세련되게 하는 방법이다. 실험적 검증이나 일관된 관찰들이 가능할 때만 과학적 방법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으며 검증은 비생산적인 가설들을 제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 검증이 없다면 서로 대치하는 이론들이 영원히 경쟁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역사가들의 이론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다. 어떤 역사적인 상황도 정확히 재현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믿음과 권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종교도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주장(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으로 당시 종교 재판으로 유죄를 받았으며, 사후 350년이 지난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황청으로부터 사면 복권되었다. 이와 같이 때때로 과학자들은 ‘과학적 진실’ 앞에서 목숨을 담보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는 분명히 실험이나 객관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시대에 따라서 과학적 사실이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동설은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만. 그러면 과학적인 사실들이 정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경험이나 법칙으로 알고 있던 과학적 사실들이 큰 테두리 안에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 보완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과거의 과학적 사실들이 20세기에 들어서 급속히 발전한 과학의 산물 때문에 현재의 시점에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그 사실이 명백히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는 점이다.
그러면 시대에 따라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가? 방사성 물질(라듐, 우라늄 등)이 발견되고 방사능과 방사선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강장제로 마시기도 했으며, 관장제로 사용했고, 지금은 아무도 하지 않겠지만 당시의 귀부인들은 피부미용에 좋다고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는 국제원자력기구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고, 대부분의 과학자나 정부에서도 인증을 하고 있다(일부 과학자들(?)과 환경단체에서는 유해하다고 보고 있음). ‘과학적 진실’이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옳다고 하여 모두가 진실일 수는 없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는 과학적 장비나 장치가 없이 경험적인 방법을 바탕으로 한 과거와 달리 고성능 컴퓨터의 활용과 정밀장치로 측정하고 데이터를 분석, 처리할 수 있는 고도로 발달한 현시점의 과학세상에서는 다르지 않겠는가? ‘과학적 진실’을 믿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하양 울산과학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