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김옥성 ‘푸른 옷’
참나무숲에 앉아
오래도록 기다리면
자벌레가 어깨 위에
가만 내려앉는다
저승에서 온 사자처럼
그가 내 생을 자질하여
관을 짜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마디마디
푸른 눈금 보면 안다
숲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푸른 옷 한 벌씩을
지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자벌레가 한땀한땀 지은 ‘푸른 옷’ 한벌
자벌레는 자나방과(科) 애벌레를 통칭하는 말이다. 다리가 앞뒤에만 있고 몸 가운데는 비어 있어 자를 재듯 독특하게 움직여 나간다. 자벌레가 머리끝까지 올라가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어린 시절엔 자벌레가 몸에 붙기라도 하면 질겁을 하고 난리를 쳤다. 어떤 자벌레는 거미줄처럼 실을 늘어뜨려 매달려 있는데 이러한 자벌레를 보면 실을 잣고, 재고, 끊어서 인간의 수명을 관리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이 생각나기도 한다. 자벌레에 관한 이런 속설이나 이미지를 시인은 ‘그가 내 생을 자질하여 관을 짜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다시 보니 자벌레의 움직임이 한땀한땀 늘여가는 바느질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자벌레는 관을 짜는 것이 아니라 사실 ‘푸른 옷 한 벌씩’ 지어주는 것임을 깨닫는다. 여름 그늘에 앉아 온통 푸른 숲을 바라보면 내 몸에도 푸른 물이 들 것 같고, 그걸 자벌레가 바지런히 짜 준 옷을 입은 것이라 생각한다면, 좋아라, 자연이 지어준, 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천의무봉의 옷 한 벌 얻어 입으니. 그렇다면 죽음은 아연 삶으로 전환되어, 저 울울한 초록이야말로 넘쳐나는 생명의 두근거림 아니겠는가.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