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칼럼]진실 보도 무엇을, 어떻게, 왜(Ⅰ)
나쁜 것을 나쁘다고,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이 진실한 언론임을 의미한다면 진실한 언론은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다분히 현실 부정적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만약 곡필이 부조리한 현실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표면상 온건하고 긍정적이며 따라서 건설적으로까지 보이는 것은 진실의 언론이라기보다 곡필의 언론이며 그것은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진실이란 어느 사건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이다. 꼭 진실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일수록 그 존재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한 면만 보고서는 그 사실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단순한 교통사고도 시비하는 두 운전사의 말을 다 듣지 않고서는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언론에 있어 ‘진실’이란 첫째 사물을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신문이 사건이나 문제를 전체적으로 또는 그 정보를 밝히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확대하여 과장 선전하기도 하고 불리한 면은 이를 은폐하여 알리지 않거나 보도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이처럼 부정확한 보도는 우선 일방적이며 편파적인 보도임을 말한다. 논평에서도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이런저런 측면을 다 같이 검토하고 거기에서 공정한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논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못 쓴다거나 또는 이 문제는 이런 방향 이런 각도로만 생각해야 하며 그 밖의 각도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것이 곧 진실과 반대되는 곡필 논평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곡필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곡필은 어느 선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왜냐하면 자유롭게 다각도의 사고를 하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에 있어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관찰할 줄 아는 안목도 필요하다. 어떤 사물을 옳게 보도하거나 논평할 수 있으려면 사물의 의미 또는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도 내일에는 부정되고 오늘 부정된 가치라도 내일에는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항상 어떠한 가치에 서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안목은 결정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란 발전하는 새로운 가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발전적 입장에서 가치를 거부하겠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란 개인의 가치가 아닌 사회적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물을 보는 가치관이 서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 가치도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 가치가 된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이해관계에 서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같은 사물, 같은 문제인데도 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 견해차가 생긴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는 소수의 이익이 아닌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하는 가치의 입장에 서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 보도는 일반적으로 순환의 길을 걷기 어렵기 마련이다. 권력에 저항하여 진실을 위해 살기는 어렵다. 양심적인 신문 또는 언론인이 때로 힘든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바른 사실을 바르게 전달하는 신문만이 독자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곡필이 아닌 직필의 신문 경상일보를 응원하며 독자 권익위원들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새겨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마음 깊이 다져본다.
박학천 본보 독자권익위원장 일산새마을금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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