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13)]하늘에는 염천, 땅에는 백일홍

2023-08-08     이재명 기자

십수일째 폭염(暴炎)이 이글거리고 있다. 35℃는 이제 예사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빙하가 붕괴돼 홍수가 나고 주민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땅이 녹고 하늘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폭염(暴炎)의 炎(염) 자는 불 화(火)를 두번 겹쳐놓은 글자다. 그러니 하늘의 불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와중에 목백일홍이 붉게 피었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 전문(이성복)

목백일홍의 또다른 이름은 배롱나무다. ‘백일홍’이 ‘배길홍’ ‘배기롱’을 거쳐 ‘배롱’으로 변한 것이다. 목백일홍은 한해살이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해 목(木) 자를 넣은 것이다. 이 외에도 자미화(紫薇花), 만당홍(滿堂紅)이라고도 한다. ‘자미(紫薇)’라는 말은 ‘자미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별자리 이름이다. 그래서 배롱나무를 궁궐에 심기도 했다. 만당홍은 ‘온 집안이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라는 뜻이다.

목백일홍은 서원이나 고택, 정자, 선비들 무덤, 오래된 사찰에 주로 심어져 있다. 특히 절에 백일홍이 많은데, 이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나무껍질처럼 벗어 버리라는 뜻이다. 실제 목백일홍 나무줄기는 해마다 껍질을 벗는다. 유명한 백일홍 명소로는 통도사, 밀양 표충사,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 구례 화엄사 등이 있다. 배롱나무는 선비들이 특히 좋아했는데, 배롱나무 풍광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소가 담양 명옥헌이다.

예로부터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백일홍은 100일 동안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백일홍의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 함’이다. 사육신 성삼문은 백일홍을 무척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일편단심과 충절을 100일 동안 변함없이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꽃에 담아 시 ‘백일홍’을 남겼다.

어제저녁 꽃 한 송이 지고(昨夕一花哀)/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는(相看一百日)/ 너와 마주하여 즐거이 한 잔 하리라(對爾好衡杯)

이재명 논설위원